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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구이를 논함 / 찰스 램 지음, 송은주 옮김. 반니 (2019)
어릴 적, 최초의 돼지구이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실수로 불을 내는 바람에 집을 홀라당 태워먹은 아이가, 그 불행한 사고에 휘말려 까맣게 타버린 돼지를 맛보게 되면서 시작되는 돼지 요리에 대한 이야기다.
그 후로 가끔 머릿속에 떠오르기는 하지만 출처는 기억나지 않는, 그런 이야기였는데 이번 기회에 그 제목과 저자를 알 수 있었다.
영국의 대표적인 수필가, 찰스 램이 쓴 “돼지구이를 논함”이 바로 그 글이었던 것.
물론 실제 역사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거의 우스개소리에 가까운 돼지 구이 발명설이지만 그 뒤로 이어지는 작가 자신의 돼지고기 찬양은 진지하게 감상할만하다.
“토끼, 꿩, 자고새, 도요새, 닭, 거세한 수탉, 물떼새, 머릿고기, 굴 한 줄, 이 모든 것을 받은 대로 아낌없이 나누어준다. 이런 것들을 친구의 혀를 통해 맛보기를 즐긴다. 하지만 선심도 한계가 있다. 리어왕처럼 ‘모든 것을 다 줄’수는 없다. 내 경우에는 돼지가 그렇다. 축복같은 돼지고기를 우정이니 뭐니 따위의 구실을 붙여 집 밖으로 내보낸다면 하느님의 은혜를 저버리는 짓이다.”
그야말로 모범적인 미식가가 혼자 음식을 즐기는 이유에 대한 모범 답안이 아닐 수 없다.
이외에도 “기혼자들의 행동에 대한 독신자의 불만”이나 “두 부류의 인간”처럼 현실을 약간은 삐딱하고 유쾌한 시선으로 바라본 주옥같은 글들이 함께 실려있으니 일독을 권할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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