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밥 자작 감행 / 쇼지 사다오 지음, 정영희 옮김. 시공사 (2019)
일본은 만화의 왕국이다보니 음식 만화, 요리 만화 역시 다양하게 만들어지고 그 인기 또한 높다. 오죽하면 우리나라 TV방송국의 모 요리프로그램 우승자가 요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일본의 요리 만화책이었을까.
그래서 요리 만화가가 쓴 음식 에세이도 꽤 많이 나오는 편이다. 이를 보고 있으면 작가가 아니라 만화 캐릭터가 자신의 단상을 쓰는 것 같아 재미있는 기분도 든다.
“나는 이자카야에서 찌그러져 있는 것을 취미로 삼고 있다. 혼자 들어가 다들 즐겁게 왁자지껄 마시는 모습을 어두운 눈초리로 흘깃흘깃 바라본다. 그런데 이게 즐겁다. 어두운 눈매를 하고 있는 내 자신이 몹시 귀엽다. 이런 이상한 취미의 소유자다.”
이런 수상쩍은(?) 취미를 고백하려면 근엄한 표정의 작가님보다는 책 속에 만화 삽화로 등장하는, 약간은 얼빠진 듯한 모습의 퉁퉁한 아저씨가 제격이다. 하지만 곳곳에서 묻어나는 음식에 대한 애정은 그 누구 못지않게 넘쳐난다.
“사실 내가 첫 번째로 언급하고 싶었으나 차마 그러지 못했던 비계가 있다. 스키야키 냄비에 기름칠할 때 문지르는 소기름 덩어리다. 지우개 정도의 크기에 새하얀 빛깔, 표면이 반들반들 빛나는 백 퍼센트 지방. 지방 아닌 곳이 한 군데도 없는 바로 그 소기름 덩어리 말이다. 뜨거운 냄비 바닥에 문지르면 치지직 소리를 내며 기름을 내뿜는 비계. 새하얗던 색깔이 차츰 투명해지고 마침내 갈색을 띄며 맛있게 익어가는 비계. 그런데 종업원이 테이블마다 붙어서 스키야키를 만들어주는 가게에 가면 휙 하니 버려지는 비계. 그 모습을 목격한 나를 “앗!”하며 엉거주춤 일어서게 만드는 비계. 순간적으로 “그거, 나 줘요”라고 말해버리게 될 것 같은 비계. 저 꿈의 비곗덩어리를 아무 망설임 없이, 당당하게, 내 존엄을 훼손당하는 일 없이 “나에게 달라”고 말할 수 있는 시대가 곧 올 것이다.”
먹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면 비싸고 맛있는 것만 먹는 미식이나 푸드파이터마냥 엄청난 양의 음식을 입 속으로 밀어넣는 대식을 떠올리기 쉽지만, 진정으로 먹을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고깃집 기름칠용 우지 조각 하나, 버터 한 조각과 간장 약간을 친 뜨거운 흰 쌀밥, 호빵 한 개에도 온 정성을 다해 집중하며 먹는다.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확고한 취향이 생기고, 그 취향을 충족시키기 위해 오므라이스 소스는 어떤 모양으로 뿌리는지, 자완무시(일본식 달걀찜)을 먹을 때 어느 순간부터 젓가락으로 먹던 것을 숟가락으로 바꿔 먹을지, 카레라이스 1인분에 적당한 카레 국물의 양은 얼마인지에 대해 심사숙고한다.
어설픈 미식가나 음식 연구가가 “이것이 정답이다!”라고 외치면 “입맛이란 개인 취향인데 누구 맘대로 정답?”이라고 반발심이 일어나겠지만 이 책의 저자가 “이렇게 먹는 것이 정답!”이라고 주장할 때에는 주책맞은 아저씨가 허풍떠는 기분이라 오히려 친근하기도 하다.
하지만 음식에 매몰되어 주변을 잊는 것은 아니다. 삶을 더 풍요롭게 하기 위한 식도락이기에, 혼밥을 먹는 아저씨에게도 센티멘털한 순간은 온다.
“드디어 다카오산 정상 도착. 이런 순간을 위한 행락 도시락이라면, 약간 분발해 백화점 식품관에서 파는 2,000엔 정도의 고급 도시락이었으면 한다. 도시락 포장을 풀고 뚜껑을 연다. 역시나 2,000엔 짜리는 다르다. 호화롭고 알록달록하고 반찬도 잔뜩 들었다. (중략) 어느 것부터 먹는 게 좋을까. 산신령님이 하라는 대로 하자.
아, 이런 곳에 은행 열매가!
아, 이런 곳에 밤이!
아, 저런 곳에 엉겅퀴가!
아, 고추잠자리가!
아, 가을 바람!
어느 사이엔가 젓가락질을 멈추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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