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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Nonfiction_비소설

크루아상 사러 가는 아침

by nitro 2022.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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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아상 사러 가는 아침 / 필리프 들레름 지음, 고봉만 옮김. 문학과 지성사 (2021)

“봉지에서 크루아상 하나를 집어 든다. 따뜻한 기운은 여전한데 반죽은 조금 물러진 것 같다. 차가운 이른 아침을 걸으며, 약간의 식탐도 부리며 먹는 크루아상. 겨울 아침은 당신 몸 안에서 크루아상이 되고, 당신은 크루아상의 오븐과 집과 쉴 곳이 된다. 서서히 발걸음을 앞으로 내디딘다. 당신은 황금빛 햇살을 온몸에 받으며 푸른빛과 잿빛을, 그리고 사라져가는 장밋빛을 가로지른다. 다시 하루가 시작되고 있다. 그러나 어쩌나. 당신은 이미 하루 중 가장 좋은 부분을 먹어버렸으니.”

“우리가 원하는 로쿰은 길거리에서 파는 로쿰이다. 가게 진열장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그것은 소박한 피라미드 모양으로 쌓여 있지만, 어찌 보면 그게 진짜 로쿰이다. (중략) 로쿰 여섯 개요? 장밋빛으로? 네, 여섯 개 전부 장미 빛깔로 주세요. 점원 소년의 친절이 헤프고 다소 지나쳐, 어쩐지 나를 놀려대는 것 같아 당혹스럽다. 하지만 어쩌랴, ‘판매원’은 이미 종이봉투 안에 장밋빛 로쿰을 집어넣어버렸으니. 이제는 보물이 쌓인 봉투 바닥을 감탄의 눈빛으로 슬쩍 내려다본다. 돌기가 졸망졸망 나 있는 이집트콩이나 예쁜 시디 브라임 와인 병 같은 로쿰들이 놓여있고, 한쪽 구석에는 북아프리카산 느낌의 빨간색 코카콜라 캔 모양의 로쿰들이 쌓여있다. 돈을 내면서도 괜히 움츠러든다. 마치 도둑질한 사람처럼 종이봉투를 들고 가게를 빠져나온다. 그러나 가게에서 몇 미터 벗어나기만 하면, 노력한 만큼의 보상을 금방 받게 된다. 아랍의 로쿰은 바로 그렇게 맛을 봐야 하는 것이다. 길거리에서, 조심스럽게, 저녁나절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말이다. 소매 여기저기에 과자 가루가 묻긴 하지만 그 정도쯤이야 어쩔 수 없지, 뭐.”

일상의 소박한 풍경을 저자의 시각에서 풀어낸 서른 네 편의 에세이 모음집.

짤막한 조각글 모음을 볼 때면 “너무 짧아서 깊이가 얕은 것이 흠”이라고 투덜거리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는 그럴 수가 없다.

에세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한 편의 시집과도 같은 책.

갑자기 중동의 어느 나라로 여행을 떠나, 선선히 불어오는 저녁 바람을 맞으며 이브릭으로 끓여낸 커피에 로쿰을 곁들여 맛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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