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의 가정식 / 신미경 지음. 뜻밖 (2019)
현대인이 고기를 너무 많이 먹는다는 건 과학적인 사실이다.
고려해야 하는 경우의 수가 많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봤을 때 큼직한 스테이크 대신 채소를 놓고, 샐러드 놓을 자리에 고기를 썰어놓아야 영양학적 밸런스가 맞는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채식주의자들을 무조건 좋게 볼 수만도 없는게,
채식주의가 자연주의와 결합하면서 종교적 색깔이 가미된 것이 문제다.
“설탕은 쓰지 않아! 그 대신 꿀을 써야지!”라거나, 이미 유전자조작과 기업식 농법으로 인해 대자연과는 거리가 먼 농산물을 보며 “이것이 자연의 향기!”라는 반응을 보인다면 지구평면설 신봉론자와 크게 다를 바 없어진다는 거.
물론 그렇게 해서 자신의 정신적 만족을 얻고 신체적으로 더 건강해지면 나쁠 건 없다. 애초에 현대인의 식생활이 건강식과는 워낙 거리가 멀기 때문에 채식주의가 어지간히 헛발질해도 건강은 더 좋아질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기존에 먹어왔던 음식들 - 설탕, 튀김음식, 아이스크림 등 -을 악의 제국처럼 묘사하고 요거트 뿌린 과일과 채소를 인생의 해답으로 제시하려면 개인의 경험과 감성 이상의 뭔가가 필요하지 않나 싶다.
“몸이 ‘요즘 해산물과 콩으로만 단백질을 먹었잖아. 이제 소고기가 먹고 싶다고!’하면 소고기를 먹었다. 어느 날 아이스크림을 손에 쥔 내게 ‘이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은 이유에 대해서 140자로 서술해봐.’라고 몸이 이걸 꼭 먹어야 하는 타당한 이유를 들어보라 말하면 ‘음, 내가 오늘 거래처의 피드백 때문에 화가 났는데 그걸 해소하기 위해서야. 단 걸 먹으면 기분이 좋잖아.’라고 답한다. 그럼 이내 ‘따뜻한 허브티 한 잔도 너의 기분을 다스리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어.(중략)’라며 대거리를 한다. 나는 대부분 내 몸이 하는 소리에 순응하며 따랐다.
글쎄… 스트레스를 받아서 아이스크림 한 개 먹겠다는 데 140자로 이유를 대는 것도 충분히 잔인한데, 타당한 이유를 대도 허브티나 한 잔 마시라니 이거야말로 몸을 속이는 거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렇다면 소고기는 왜 그 가혹한 잣대에서 면제인가? 좀 더 가열차게 채식주의를 실천하는 비건들이 ‘올리브유를 뿌린 두부 한 접시도 너의 기분을 다스리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어.’라고 할텐데. 결국 어떤 문제건간에 관점과 정도의 차이에 따라 보는 시각을 달라질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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