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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Fiction_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 마틴 가드너 주석판

by nitro 2006.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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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자료 자체로 보기엔 지금까지 나왔던 것 중에서는 가장 완벽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즐기면서 읽기엔 좀 힘들지도.

이는 엄청난 양의 주석이 달려있다는 데서 문제가 발생한다. 의역을 통해 자연스럽게 풀어나가야 할 부분도 주석의 설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직역을 써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 (아마 이때문에 번역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의견이 많이 나오는 것일지도)

예를 들어 "병에는 '나를 마셔요'라는 상표가 붙어있었다"라는 문장이 "병목에는 종이가 매달려 있었고, 그 종이 위에는 '마셔라(drink)'라고 커다란 글자가 멋지게 인쇄되어 있었다"라는 문장보다 훨씬 더 간결하고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그 옆의 주석에서 빅토리아 시대의 약병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후자의 번역을 택할수 밖에 없게 된다. (혹자는 이러한 주석이 필요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병 몸통에 라벨이 붙고 스크류 방식의 뚜껑이 달린 와인병을 상상하던 사람이 코르크마개로 주둥이를 막고 라벨 대신 종이조각을 걸어놓은 병으로 생각을 바꾼다면, 이야기 전체의 분위기도 달라질 수 있는 법이다)

이런 일이 책 전체에 걸쳐서 일어나기 때문에 전반적인 번역의 분위기 역시, 기존에 우리가 읽었던 앨리스에 비하면 딱딱하고 어색하게 되어버린다. 심지어는 그렇게 교과서적으로 번역할 필요가 없었던 부분도 다른 문장과의 분위기를 맞춰주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재미없게' 번역한 경우도 보일 정도.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이야기를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이야기를 '완전히' 이해하고 즐기기 위해서는 필요한 책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9세기라는 시간의 장벽과 영국이라는 공간의 장벽, 그리고 영어라는 언어의 장벽을 모두 극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그냥 흘려들었던 영국식 말장난과 세세한곳에 희미하게 숨겨진 여러 장치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여기에 어떠한 의미를 부여했는지를 보는 것은, '동화'가 아니라 '학술적 자료'로서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보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준다

물론, 그 전에 이미 동화로서의 이 이야기에 푹 빠져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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