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친 /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민음사 (2017)
“집 안이라도 둘러봐요. 안내할까요? 뭐로 판단하는 타입이죠?”
차를 따르면서 유이치가 말했다.
“뭘요?”
내가 그 푹신한 소파에 앉아 되묻자, “집과 그 집에 사는 사람의 취향. 화장실을 보면 안다든지, 흔히 그런 말들 하잖아요.”
그는 담담하게 웃으면서, 차분하게 말하는 사람이었다.
“부엌.”이라고 나는 말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평소 할머니와 친하게 지냈던 청년 다나베 유이치의 집에서 지내게 된 사쿠라이 미카게.
그리고 유이치의 아버지이자 지금은 성전환해서 엄마가 된 에리코.
누군가의 죽음으로 인해 빈 자리에 새로운 사람들이 마치 물이 차듯 채워지며 계속 살아나가는 이야기, 키친.
그리고 키친의 후속편, 에리카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그 상실감을 담담하게 메꿔나가는 미카게와 유이치의 이야기, 만월.
전작과 이어지지는 않지만 그 주제만은 공유하는, 약간은 몽환적인 이야기, 달빛 그림자.
보는 사람마다 굉장히 감상이 다를 수 있는, 그런 소설 아니었나 싶다.
차분하고 담담하고, 뭐랄까 일본 특유의 죽음에 대한 정서가 잘 드러난 느낌이랄까.
다른 것보다 부엌이라는 공간에 의지하며 애착을 갖는 심리에 대한 묘사가 마음에 든다.
그런 것 치고는 음식 이야기는 별로 안나오는게 옥의 티지만.
“오랜만에 다나베네 집 부엌에 서보았다. 순간 에리코씨의 웃는 얼굴이 떠올라 가슴이 저릿저릿했지만, 몸을 움직이고 싶었다. 나는 청소를 시작하였다. 세제를 뿌려 싱크대를 박박 닦고, 가스 레인지 대를 닦고, 전자 레인지 안에 있는 내열 접시를 닦고, 칼을 갈았다. 행주를 전부 빨아 건조기에 돌렸다. 윙윙 돌아가는 건조기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정말 누그러졌다. 어째서 나는 이토록이나 부엌을 사랑하는 것일까. 이상한 일이다. 혼의 기억에 각인된 먼 옛날의 동경처럼 사랑스럽다. 여기에 서면 모든 것이 처음으로 돌아가고, 무언가가 다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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