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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카루의 달걀 /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이수미 옮김. 오퍼스프레스 (2016)
쇠락해가는 시골 마을에서 양계장을 운영하는 무라타 지로. 벼농사를 짓는 친구에게서 최고급 쌀을 받아 최고급 달걀을 얹어 회심의 달걀밥을 만든다. 이것으로 사람들을 모아 마을을 부흥시키겠다는 원대한(?)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주인공은 바보스러울만치 착하고, 지로를 돕는 주변사람들 역시 착한 사람들 뿐이고, 일은 순조롭게 성공해서 모두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엔딩. 뭐랄까, 요즘 애들이 보는 동화책도 이보다는 더 악역이 많이 나오고 긴장감 있을 듯.
하지만 소설의 색깔 자체가 힐링 소설인지라 그렇게 심하게 거슬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거슬리는 건 일본에서만 국민 음식 취급받는 달걀밥에 대한 경험이 없어서 공감하는 게 힘들었다는 점 정도.
우선 달걀 상태를 차분히 관찰했다. 노른자도 흰자도 봉긋하게 솟아 있다. 흰자는 탁한 반투명이다. 즉, 신선도는 뛰어나다. 오늘 아침에 낳은 달걀이 틀림없다. 노른자는 잘 익은 감 색깔로 광택이 흐른다. 일단 겉모양은 합격이다.
그 다음엔 은색 티스푼으로 노른자 표면을 눌러 보았다. 좋다. 노른자를 감싼 막이 튼튼하고 탄력도 충분하다.
그릇을 손에 들고 냄새를 맡는다. 희미하게 생선 냄새가 나지만 싫은 냄새는 아니다. 노른자의 진한 맛과 동물성 유지의 고급스러운 단맛이 섞인 듯한 절묘한 향이다. 숟가락으로 노른자를 건졌다. 혀 위에 올리고 핥듯이 맛본다. 그 순간.
"으으음..."
나는 무의식중에 신음소리를 내고 말았다.
매끈매끈 푸딩 같은 부드러운 감촉과 은근한 단맛, 노른자가 녹으면서 코로 빠져나가는 담백한 향까지 모두 탁월하다. 다음은 흰자다. 노른자가 입에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흰자만 쪽 빨았다. 이 달걀은 놀랍게도 흰자까지 부드럽고 달콤하다. 혀에 스며드는 단백질 맛이 감미로운 데다 뒷맛도 무척 깔끔하다.
- p.176
달걀에 대한 애정이 넘쳐나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달걀볶음밥이 아닌 달걀밥이다. 달걀을 깨서 뜨거운 밥에 그대로 올려 휘적휘적 섞어먹는 달걀밥은 그 끈적하고 미끈한 식감 때문에, 그리고 날달걀의 비린내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즐겨 먹는 방식은 아니다.
다만 진짜 좋은 달걀을 사면 한 번 쯤 시도해봐도 좋지 않을까 싶은 수준이랄까.
전반적으로 달걀밥 하나에 올인한 책이라 조연으로 나오는 곤들메기 술 정도를 빼면 그닥 대단한 음식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심적으로 지친 일상 속에서 잠시 쉬어가며 읽는 책으로는 그 역할을 충분히 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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