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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비노기: 내게는 열 여덟살짜리 숨겨둔 딸이 있다. 내게는 열 여덟살짜리 숨겨둔 딸이 한 명 있다. 이제 막 10살이 된 딸과 초등학교 1학년 아들에 비하면 터울이 제법 있는 셈이다. 오랜 시간동안 키워왔지만 그 존재를 아는 사람은 나 뿐이다. 이렇게 말하니 왠지 숲 속 외딴 오두막이나 폐가의 지하실에 아이를 가둬놓고 기르는 공포영화가 떠오른다. 실제로는 게임 속에서 키우는 딸내미 이야기지만. 컴퓨터 게임 속의 딸이라고 하면 대부분은 ‘프린세스 메이커’라는, 딸자식 잘 키워서 왕비 만드는 것이 목표인 게임을 생각할 법하다. 하지만 프린세스 메이커의 육아는 짧으면 몇 시간, 길어야 며칠이면 끝나는 이야기에 불과하다. 반면에 내가 키우는 이 딸내미는 2005년부터 기르기 시작했으니 명실공히 실제 나이가 열 여덟살이다. 만약 현실이었다면 밤 늦게까지 수능공부를.. 2023. 1. 12.
앨리스 죽이기 앨리스 죽이기 /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김은모 옮김. 검은숲(2015) 도서관 서가를 지나다가 앨리스 죽이기, 도로시 죽이기, 팅커벨 죽이기가 연속으로 꽂혀있는 것을 보고 ‘뭔 동화책 주인공들을 이렇게 줄줄이 죽이나’ 싶어서 읽기 시작한 책. 주인공 ‘아리’는 이상한 나라의 꿈을 꾸다가 꿈 속에서 동화 속 등장인물이 죽는 사고가 발생하면 어김없이 현실에서도 그에 대응하는 누군가가 비슷한 방식으로 살해당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현실과 이상한 나라를 오가며 연쇄 살인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는 것이 주된 내용. 결말 부분의 반전은 나름 참신했지만 전반적인 필력이나 글을 풀어나가는 과정이 그렇게까지 내 취향은 아니다. 츠츠이 야스타카의 파프리카쪽이 내 입맛에는 더 맞는달까. 따라서 나머지 메르헨 시리즈는 굳이 .. 2023. 1. 12.
Happy Together 다 보고 난 뒤 뒷맛이 씁쓸한 이야기들이 있다. 살인의 추억이나 미스트에서나 느낄 수 있을법한, 그냥 단순히 새드 엔딩이 아니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뭔가 기분이 더럽고 꿀꿀하게 만드는 그런 느낌. 부정적인 감정임에도 불구하고 이야기 자체는 잘 풀어낸 명작이기에 더 그런 기분이 들지도 모르겠다. 고랭순대의 만화들이 대개 그렇다. 해피엔딩이 없는 건 아닌데, 새드엔딩일때 더 몰입력이 있고, 새드엔딩을 넘어 '이건 대체 뭔...'이라는 감상이 터져나오는 전개일때 더 파괴력이 강하다. 귀염귀염한 느낌의 캐릭터들이 주로 나온다는데서 왠지 라쿤 아파트 느낌이 나기도? 이런 류의 영화나 만화 등에 흥미있는 사람이라면 강추. 작가 블로그: https://blog.naver.com/gorangsundae/2215801.. 2023. 1. 6.
위치 오어 비치 마녀와 국토안보부가 피터지게 싸우는 가운데 낀 두 연인의 서바이벌 일대기. 위기에 처한 연인을 구하기 위해 거대 세력과 맞서는 건 흔하디 흔한 이야기지만 '마녀'가 부리는 여러 스킬을 비롯한 세계관과 인물들이 너무나도 매력적이다. 그림체가 좀 투박하다고 느껴질수도 있는데, 첫번째 컷부터 숨쉴틈없이 이어지는 내용을 따라가다보면 별로 단점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블로그에서 전편 관람이 가능하다. 이 만화가 마음에 들었다면 같은 작가의 음식 지옥 시리즈 역시 추천. 작가 블로그: https://blog.naver.com/wer2006/222516791178 2023. 1. 5.
생선 요리의 과학 생선 요리의 과학 / 나루세 우헤이 지음, 이민연 옮김. 글항아리 (2020) 생선, 패류, 갑각류 등 해산물 약 50종에 대한 여러가지 정보를 담고 있다. 백과사전 느낌이 나면서도 내용을 살펴보면 인문사회적 정보에서부터 개인적인 감상까지 다양하게 포함하고 있는 것이, 마치 해산물에 대한 나무위키를 보는 느낌. 예를 들어 “고등어” 항목을 보더라도 “참고등어와 망치고등어 두 종류가 있다. 섭씨 10~20도의 깨끗한 연해에서 살고 제철은 가을에 산란을 마친 뒤이며, 맛있는 먹이를 잔뜩 먹어 지방질 함량이 높아져 맛이 좋다”라는 식의 생물학적 정보를 제공하는가 하면 “며느리에게 가을고등어를 먹이지 않는다는 말은 맛있는 고등어를 며느리에게 주고싶지 않은 시어머니의 고약한 마음씨와 과식으로 인해 히스타민 중독을.. 2023. 1. 5.
대체역사 판타지 리뷰: 임꺽정은 살아있다 #대체역사 #회귀 #임꺽정 “나리, 내기를 하나 합시다.” “네가 지금 감히 이 염라대왕을 희롱하려 하느냐?” “나는 무식하여 그런가, 암만 생각하여도 내가 일개 도적놈 소리를 들어야 하는지 수긍이 되지 않소. 바라건대 내 한번 더 이승에 가서 날뀌게끔 해주시오. 그리하고서도 범상한 도적으로 끝난다면, 죗값을 곱절로, 아니 거기에 나리를 농락한 죄며 입 함부로 놀린 죄며 곱절로 셈하여 받으리다.” 관군에게 토벌당하고 염라대왕 앞에서 “네깟놈이 무슨 큰 도적이냐!”라는 말에 열받은 나머지 대들다가 자신이 본격적으로 도적의 길로 접어들던 때로 환생한 임꺽정. 다른 회귀물과는 달리 ‘미래를 다 알고있다’는 장점 하나로 다 뒤집어 엎는 먼치킨 이야기는 아니다. 아예 2화에서부터 미래를 알고 있다는 것이 그렇게 .. 2023. 1. 3.
현대판타지 소설 리뷰: 친환경 재벌이 되기로 했다 #현대판타지 #초능력 #쓰레기재활용 #분리수거를잘하자 판타지 소설이라고 현실성 없는 이야기만 줄줄 늘어놓지는 않는다. 오히려 상상으로 만들어낸 부분 외에는 철저히 고증 맞춰가며 현실적으로 묘사해야 독자들이 몰입할 수 있다. 게임 속 괴물들이 포탈을 타고 현실 세계에 나타나는 건 다들 공감을 해도, 주인공이 K2 소총에 7.62미리를 장전하는 건 무수히 많은 군필 독자들이 용납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업계 이야기를 해야 대충 써도 그럴듯하게 들린다. 그렇다고 사람들의 삶에서 너무 동떨어진 이야기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일단 그런 희귀직종 종사자가 소설을 쓸 확률이 낮다는 건 둘째치고, 기본적으로 자신의 삶과 어느 정도는 연관이 있어야 더 흥미가 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소설의 직.. 2022. 12. 29.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너의 췌장을 먹고싶어 / 스미노 요루 지음, 양윤옥 옮김, 소미미디어 (2017) 제목부터가 뭔가 약간 공포스러운, 하지만 표지는 그와는 정반대로 달달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수상한 소설. 차라리 “너의 심장을 먹고싶어”였다면 로맨틱한 분위기가 어찌어찌 날지도 모르겠는데 하필이면 췌장인 탓에 꽤나 그로테스크한 느낌이 든다. 물론 이 모든 건 작가가 의도한 대로겠지만. 유명한 작가 두 명의 이름과 동명이인인 주인공, 그리고 주인공의 동급생이자 불치의 병에 걸려 일년 정도의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야마우치 사쿠라. 주인공은 우연히 사쿠라가 쓰고 있는 투병일기 비슷한 문서를 보게 되고, 이를 계기로 친해지면서 그녀의 버킷리스트를 달성하는데 함께하게 된다. 사회생활에 뭔가 문제가 있는 주인공이 신체적으로 문제가.. 2022. 12. 27.
온 마음을 다해 디저트 온 마음을 다해 디저트 / 김보통 지음, 한겨레출판 (2019) 디저트라고 하면 알록달록 예쁜 색깔에 달콤하고 행복한 분위기가 떠오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 책은 티라미수와 크레이프, 벚꽃 아이스크림과 호두과자 등 디저트가 한가득 담겨있지만 정작 거기에 담긴 감정은 쌉싸름하다못해 씁쓰름하다. 세계 곳곳을 여행하고 많은 사람을 만나며 맛있는 디저트들을 수없이 먹었건만 팔자 좋은 한량의 세계 여행 먹방과는 거리가 멀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초코케이크는 민박집 술심부름하며 빈 병 팔아 모은 돈으로 사서 욕쟁이 청소부 할머니와 나눠 먹는다. 대만에서 먹은 밀크티는 목줄을 조여오는 마감에 쫓기다 못해 비틀어 짜이고 너덜너덜해진 몸과 마음을 질질 끌며 외국으로 도망친 결과물이다. 심지어는 어느 정도 미화되어.. 2022. 12. 20.
현대판타지 웹소설 리뷰: 로또 1등도 장사를 합니다 문제. 다음 중 배고픈 남매에게 공짜 돈까스를 인심 좋게 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1. 장사도 안되는 마당에 코로나까지 겹쳐 빛만 쌓이고 있는 사장님 2. 장사도 안되는 마당에 코로나까지 겹쳤지만 며칠 전에 로또 1등 당첨된 사장님 예로부터 인심은 곳간에서 난다고 했다. 내 주머니에 돈이 넉넉히 있어야 남의 불쌍한 사정도 눈에 들어오는 법이다. 그리고 남을 돕고, 만사에 여유를 갖고 대하다 보면 모든 일이 잘 풀리기 마련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김정훈 역시 마찬가지. 대기업 프랜차이즈 음식점 종사자로 일하다가 여러가지 더러운 꼴을 보다못해 뛰쳐나와 조그만 돈까스집을 시작한, 어찌 보면 주변에 흔하게 널린 소시민 중의 한 사람이다. 다른 점이라면 로또가 당첨이 되어 37억원이 넘는 거금을 손에 쥐게.. 2022. 12. 15.
여행 가는 날 여행 가는 날/ 서영 지음, 위즈덤하우스(2018). 밤 늦은 시각, 할아버지의 집 문을 두들긴 낯선 손님. 하지만 할아버지는 이 손님을 오랫동안 기다린 듯, 반갑게 맞이하며 길 떠날 채비를 한다. 장롱 밑의 비상금 동전들을 효자손으로 꺼내 모으고, 깨끗하게 목욕도 하며 먼 길을 떠난다. 아동 독자를 대상으로 한 그림책이기에 아이들이 낯설 수도 있는 '죽음'이라는 개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도와주는 책. 하지만 어른이 읽어도, 처음 몇 페이지만 읽어도 '여행'의 실체를 알게 됨에도 불구하고, 가슴 따뜻해지는 감동을 선사한다. 할아버지는 이야기를 나누느라 정신없는 통에 달걀이 다 익지도 않았을 텐데 봉지에 가득 담았어요. - 여행 가는 날, 10p 여행 중에 길안내 손님과 나눠먹을 달걀 일곱 개를 삶는.. 2022. 12. 13.
판타지 소설 리뷰: 2회차 기사가 살아가는 법 지구에서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던 주인공이 갑자기 판타지 세계로 떨어졌다. 조그만 장원의 기사, 윌리엄으로 빙의했지만 급변하는 시대에 이리저리 휩쓸리다가 결국 산적으로 전락. 그걸로도 모자라서 쉽사리 토벌당하며 한많은 생을 마친다. 그리고 (당연히) 판타지 세계 2회차 시작. 전생에는 없었던 상태창이 해금되면서 적들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미니맵'이라는 사기적인 능력까지 보유하게 된다. 자신의 뒷통수만 치려고 호시탐탐 노리는 영주민들을 버리고 홀홀단신 떠나며 항구도시 칼마르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주인공. ---------------------------- "좋습니다. 능력있는 사람은 언제나 필요하지요. 전투에 능숙하다. 그렇게 보일 나이는 아니지만 본인이 그렇다고 주장하니 믿어드리지요. 그런데 윌.. 2022. 12.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