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쩝쩝박사 쩝쩝박사 / 김준형, 이금라, 임세아, 한주희 지음. 부크크 (2020) 네 명의 저자가 자신만의 음식 이야기를 엮었다. 그런데 글 자체도 거의 음식일기 수준의 단상이고, 요리도 그닥 대단할 것은 없어서 별로 큰 감흥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요즘엔 워낙 대단한 사람들이 요리책이나 요리 에세이를 내는 경우가 많다보니 눈이 높아진 탓일까. 에세이로 보기엔 글의 깊이가 얕고, 요리책으로 보기엔 요리의 깊이가 얕다. 2023. 3. 16.
사람의 부엌 사람의 부엌 - 냉장고 없는 부엌을 찾아서 / 류지현 지음, 낮은산 (2017) 나름 요리학교도 졸업하고 업계에서 짧게나마 일해 본 얼치기 요리사의 입장에서는 전통적인 것에 무조건 가산점이 붙는 것이 약간 불합리하게 보이기도 한다. 한식이라고 하면 무조건 한복 입은 할머니들이 전통적으로 빚은 항아리에서 전통적으로 담근 장을 퍼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요리하는 장면이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못마땅하달까. 물론 그런 방식이 갖는 나름대로의 장점을 모두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또 지나치게 신성시하는 것 역시 잘못된 것 아닌가 싶다. 그래서 이 책은 실용적인 입장에서 봤을 때는 그렇게 공감가는 글은 아니다. 아이캔이 우주선 타고 아빠찾아 외계로 떠나는 2020년도 지난 마당에 “냉장고 없이 살자”는 주.. 2023. 3. 10.
인도에는 카레가 없다 인도에는 카레가 없다 / 이옥순 지음. 책세상 (1997) 인도에서 유학 생활을 하며 인도 역사를 전공한 저자가 쓴, 인도 안내서. 멀게는 영국인들이 ‘미개한 인간들’이라고 멸시하며 세상에 널리 흩뿌린 편견에서부터 가깝게는 단기 배낭여행족들이 수박 겉핥기 식으로 흝어본 후 아는척하며 퍼뜨린 잘못된 지식까지, 우리에게 인도는 애매모호하고 추상적이며 베일에 싸인 이미지로만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인도에서 오랫동안 살면서 그 역사와 문화를 깊이있게 공부한 저자는, 그 표면적인 현상의 허구와 진실을 공정하게 보여주면서 그 이면에 감춰진 근본적인 이유까지 언급한다. 식당에서 주는 숟가락이나 포크가 과연 내 입에 넣을만큼 깨끗한가? 대도시에 사는 서구화된 계층과 일부 젊은이들을 제외하면 아직도 많은 인도인이.. 2023. 3. 2.
판타지 웹소설 추천: 내 인권을 돈주고 구독함 모든 나라를 해체해서 전 인류를 돈으로 다스리자 말하는 메가콥의 첨병 유토피아 드림. 로봇은 비싸고 시민들 굴리는 건 표를 잃으니까 사람을 배양시설에서 찍어내 굴리는 정부. ‘진짜 우열을 쉽게 가릴 수가 없는 놈들이다.’ "돈으로 안되는 것이 있다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에 충분한 돈이 없는 것은 아니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라는 말도 있듯이, 우리는 거의 모든 것이 돈으로 해결되는 자본주의-황금만능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하더라도 결혼은 사랑으로 하는 것이었지만, 오늘날 결혼 조건은 애정에 앞서 (혹은 비슷한 무게로) 집과 자동차, 연봉에 중점을 둔다. 소설 속 주인공들이 회귀, 빙의, 환생을 하고 나서 가장 먼저 외치는 말이 '상태창'이지만, 실제로는 돈이야말로 가장 직관적이.. 2023. 2. 21.
청담동 프라이빗 요리수업 청담동 프라이빗 요리 수업 / 목진희 지음, 다독다독 (2020) 옛날부터 백화점의 문화 교양 강좌에는 요리 수업이 빠지지 않았다. 백화점의 주요 고객인 주부, 특히 고급스러운 것을 좋아하는 주부들에게 요리 역시 자신을 뽐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었을까. 그래서 잘나가는 동네의 대명사 청담동의 ‘프라이빗 요리 수업’이란 어떤 것일지 궁금해진다. 실제로 진행되었던 프라이빗 쿠킹 클래스 (이 단어가 너무 멋부리는 느낌이라면 ‘소규묘 요리 강좌’로 치환시키자)를 계절별로 4주씩, 한 주당 세 개의 요리를 다뤄 총 48개의 레시피를 담고 있다. 르 꼬르동 블루 스탠다드이면서, 일반인이 따라갈 수 있는 수준의 요리를 구성하다보니 좀 애매한 느낌이 없잖아 있긴 하다. 완전 고급도 아니고 완전 집밥도 아닌, 가볍게.. 2023. 2. 16.
현대판타지 웹소설 감상: 내가 옳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푹 빠져들게 만드는 세기의 명작이 아닌 바에야 대다수의 소설들은 주요 독자층을 갖고 있다. 특히 독자의 나이와 성별에 따라 좋아하는 장르가 급격하게 갈리는 웹소설판은 그런 현상이 훨씬 더 강하게 나타난다. 중고등학생에게 회사원 성공담은 하나도 공감되지 않는 다른 세상 이야기에 불과할 뿐이고, 30~40대 아저씨에게 드래곤이 깃든 마검으로 보이는 괴물마다 썰어버리는 10대 소년의 모험담은 유치하게 보이기 십상이다. 그러니 잘 쓴 웹소설이라면 잠재적 독자층이 분명하고, 또 그런 주요 고객층에 입맛에 잘 맞는 내용과 전개를 풀어낼 줄 아는 작품이다. 이 소설, “내가 옳다”의 주인공은 40대 이혼남. 일단 제목에서부터 풍겨져 나오는 꼰대의 아우라가 주인공의 설정과 맞물리며 “이 소설은 마누.. 2023. 2. 14.
파인다이닝 파인 다이닝 / 최은영 외. 바통 (2018) 읽으면서 ‘아 씨바 할 말을 잊었습니다 (feat 이외수)’를 계속 중얼거렸다. 내게 있어서 음식이란, 요리란, 화려하거나 소박하거나를 떠나서 뭔지는 몰라도 어쨌든 행복함이나 그 비스무레한 것과 연관된 개념이었다. 당연하지 않은가. 무언가를 먹는다는 건 곧 삶을 이어간다는 것이고, 삶을 이어가려는 의지는 최소한의 긍정적인 사고를 요구하니까. 하지만 이 소설은 일곱 명의 작가가 죄다 요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도 분위기는 비오는 날 하늘처럼 꾸무럭하다. 그러면서 깨닫게 되는 거다. 내게 있어서 밀푀유 나베가 즐거운 경험이었다면, 채식주의자 레즈비언 애인을 둔 누군가에게는 “절대로 닿을 수 없는 어떤 아득한 세계의 상징, 영원한 불가능의 표지”일 수도 있다는 사.. 2023. 2. 9.
밥이 그리워졌다 밥이 그리워졌다 / 김용희 지음. 인물과 사상사 (2020) 음식에 얽힌 추억을 떠올리는 에세이. 어쩌다 한 편 정도를 잡지 등에서 조각글로 본다면 모르겠는데, 280페이지짜리 책에 50개의 에피소드를 꽉꽉 채워놓으니 “빵에 양귀비 씨앗을 너무 많이 뿌린 느낌”이랄까. 각각의 에피소드마다 떠오르는 감정 - 추억, 아련함 -이 비슷한데다가 거의 매번 다른 소설이나 영화 등을 인용하고도 삽화 제외하면 4페이지 정도밖에 안되는 짤막한 글들인지라 깊이가 좀 얕게 느껴진다. “미슐랭 별 다섯 개를 받은 파스타”라거나 (미슐랭은 별 세 개가 최고), 간장게장을 담그는데 “한 계절을 지내야 하리라” 라고 하는 등 (간장게장은 냉동하지 않는 이상 2~3일 정도 숙성시켜 열흘 내에 먹어야 한다) 요리 측면에서 보면 오류.. 2023. 2. 2.
현대판타지 웹소설 추천: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 우리가 평화롭게 살아가는 일상은, 실제로는 언제 끝장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이미 공룡을 멸종시킨 전적이 있는 운석 충돌에서부터, 레이더가 잘못된 신호를 포착하는 바람에 터질 뻔 했던 핵전쟁의 위협, 흑사병과 스페인 독감을 잇는 코로나가 보여주는 치명적인 전염병 확산에 이르기까지. 여기에 정체불명의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다거나, 게이트가 열려 몬스터가 떨어진다거나 하는 약간의 허구적 장치만 더하면 마치 도미노 무너트리는 것 마냥 연쇄반응이 일어나며 지구는 난장판이 되고 만다. 그래서 미국에는 이런 포스트 아포칼립스 시대를 진지하게 대비하는 '생존주의자'들 역시 꽤나 많다. 핵폭발을 견뎌내고 방사성 낙진이 줄어들 때까지 버티는 것을 목표로 하는 방공호에서부터 장기적인 생존을 위한 농산물 재배와 약탈자를 퇴치.. 2023. 1. 31.
음식으로 읽는 로마사 음식으로 읽는 로마사 / 윤덕노 지음. 더난콘텐츠 (2020) 서양 문명의 근원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고대 로마에 그 뿌리를 두고있다. 그래서 서구식 문화를 받아들인 우리나라에서도 고대 로마에 대한 환상이라던가 흥미가 어느 정도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콜로세움의 검투사 경기나 세계를 정복한 로마군단, 뛰어난 건축물 외에도 많은 관심을 받는 분야가 바로 그들의 식생활이다. 이 책에서는 고대 로마인들의 식습관 외에도 소금, 빵, 와인, 올리브유, 굴, 향신료로 대표되는 음식들이 당시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고, 또 그 결과가 어떤 방식으로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는지에 대해 다루고 있다. “참치나 고등어 내장과 신선한 피에 충분한 소금을 뿌린 후 항아리에 담아 두 달 동안 숙성시킨다. 그러면 진하고 풍.. 2023. 1. 26.
반바지 SF 단편만화 "슈뢰딩거의 고양희" 작가, 반바지의 트위터. SF 비스무레한 주제의 단편만화들이 주로 올라온다. "과거시험에 합격하는 방법"이 연중된것은 아쉽지만 각각의 단편도 굉장히 재미있어서 위로가 된다. 특유의 위트가 살아있으면서도 과학 이론적으로도 꽤나 심도있게 접근하는 에피소드가 많아서 SF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볼 수 있을 듯. 작가 트위터: https://twitter.com/bahnbazi 2023. 1. 20.
핸드 투 마우스 핸드 투 마우스 / 린다 티라도 지음, 김민수 옮김. 클 (2017) 가난이나 빈곤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아프리카의 굶주린 어린아이나 서울역 광장에 누워있는 노숙자들을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가난의 진짜 모습은 그보다는 훨씬 더 가깝고 현실적이고 잔혹하다. “일자리 없이 가난한 것보다 일하며 가난한 것이 훨씬 더 비참하다. 일을 하지 않을 때는 돈이 한 푼도 없으면 사는 게 피곤하고 짜증나며 집 밖으로 얼씬할 수 없다는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반면 죽도록 일하고 노동시간을 늘려달라 애걸하고 동전 한 푼도 헛되게 쓰지 않는데도 전기세를 낼 수 없다면, 그것은 영혼이 죽는 경험이다.” 인터넷에서 ‘가난은 돈이 든다’는 표현을 자주 보았는데, 알고 보니 이 책이 원전이었다. 실제로 한 .. 2023. 1.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