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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세계문학 전집: 문학이란 무엇인가 문학이란 무엇인가 / 장 폴 사르트르 지음, 정명환 옮김. 민음사 (2017) 글 쓰는 게 직업이라고 당당히 내놓고 말하기엔 뭣하지만, 그래도 일단은 키보드로 밥벌어먹고 사는 입장에서는 문학이 무엇인지에 대해 얕게나마 고민해본 기억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글쓰기라는 게 그렇게 얕은 고민으로도 파악할 수 있을만큼 만만한 분야도 아니어서 - 이는 800번대 앞쪽 서가를 가득 채운 글쓰기, 작문 관련 서적들만 봐도 알 수 있다 - 사르트르의 이 책은 꽤나 다양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물론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문맹률이 높았던 당시 시대상에 비하면 독자를 정의하고 문학의 역할에 대해 고찰한 이 책이 불변의 진리를 담고 있다고 보기엔 어렵다. 그 당시엔 문학을 향유할 수 있었던 계층이란 일종.. 2022. 2. 16.
라면의 황제 라면의 황제 / 김희선 지음. 자음과 모음 (2014) “중요한 것은, 그 즈음부터 인류가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혹은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가 대신 무엇을 먹어야 하는가에 탐닉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만약 누군가가 세상에서 가장 깨끗하고 건강한 음식을 먹는다면 그의 영혼 역시 세상에서 가장 고결할 것임을, 그리고 그의 지능이나 그의 미래, 그 밖의 모든 것 역시 완전무결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덕분에 대형 마트의 식료품 코너가 새로운 명상의 장소로 급부상했는데, 그곳에선 남녀노소를 불문한 각양각색의 인간들이 당근이나 브로콜리 같은 걸 손에 든 채 존재에 대한 한없이 깊은 생각에 빠져들곤 했기 때문이다.” 라면이 금지된 미래. 27년 동안 라면만을 먹고 살아온 것으로 기네스북 등재 신청을.. 2022. 2. 15.
달까지 가자 달까지 가자 / 장류진 지음. 창비 (2021) 각 등급의 알파벳은 이런 뜻이었다. Outstanding(특출함), Incredible(뛰어남), Meet requirement(요구 충족), Below requirement(요구 이하), Need supplement(보충 필요).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바꿔 불렀다. 아무래도 이쪽이 훨씬 직관적이었다. O: 오짐, I: 인정, M:무난, B:별로, N:나가. “언니, 그래서 결론이 뭐야? 지금 우리한테 비트코인을 하자는 거야?” “다해야.” 언니가 자세를 낮춰 테이블 건너 앉은 내 쪽으로 몸을 슬쩍 기울이더니, 이렇게 말했다. “넌 내가 그렇게 뻔한 소리를 할 것 같니?” 언니는 이더리움을 하자고 했다. 처음 먹어본 유기농 목장의 우유는 맛도 물론 좋았지만.. 2022. 2. 14.
소리 포착기 - 맛 소리포착기 - 맛 / 로알드 달 지음, 이원경 옮김. 녹색지팡이 (2017) 직업병이라고 해도 좋을 법한 버릇이 하나 있는데, 책의 제목에 음식 이야기가 보이면 거의 조건반사적으로 읽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특히 로알드 달의 “맛”은 뮈리엘 바르베리의 “맛”을 읽고 난 다음이라서인지 더 큰 기대감을 갖고 읽기 시작했다. ‘십대를 위한 로알드 달’ 단편모음집 중 한 권인 ‘소리포착기’에 실린 글로, 포도주의 품종과 빈티지를 맞추는 내기에 관한 이야기가 그 내용이다. 사실 소설 자체만 놓고 본다면 마지막 반전이 재미있는 짤막한 글에 지나지 않는다. 로알드 달이라는 작가가 워낙에 레전드인지라 (찰리와 초콜릿 공장!) 글 자체의 재미야 보증수표이지만서도, 어린이용으로 큼직한 폰트를 사용하고 삽화를 더했음에도 15.. 2022. 2. 13.
파리 마카롱 수수께끼 파리 마카롱 수수께끼 /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문학동네 (2021) 가장 최근에 출시된 소시민 시리즈의 외전. 원래의 소시민 시리즈도 가볍게 읽을만한 내용이라 그닥 길다는 느낌은 못 받았는데 아예 훨씬 더 짧은 단편이 모여서 나오니 훨씬 더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 사건은 여전히 소소하고 - 마카롱을 세 개 주문했는데 갑자기 네 개로 늘어났다거나, 여러 개의 빵 중 하나에 머스타드를 넣는 벌칙게임을 했는데 아무도 꽝을 뽑지 않았다거나 - 그 결말 역시 알고 보면 뜬금없다거나 허무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하지만 캐릭터가 확실한 두 주인공이 디저트와 문제를 함께 해치워 나가는 그 분위기가 워낙 마음에 들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읽는다. 특히 다른 에피소드에서는 음식의 묘사에 감동받은 반면, 이.. 2022. 2. 11.
판타지 소설 리뷰: 암흑가를 손에 넣는 법 대한민국에서 회사원으로 살던 주인공이 과로사로 쓰러지더니 이세계에서 환생한다. 태어나자마자 보육원 앞에 버려지고, 열살이 되자 강제로 쫓겨난다. 뒷골목 생활에서 그나마 희망을 갖게 된 건, 다른 사람의 초월적 재능 - 기프트를 알아보는 능력을 각성했다는 것. 엄청난 전투 잠재력을 지닌 소녀를 구해주거나 희귀한 치유 기프트를 지닌 아이에게 은혜를 입히며 점차 세력을 넓혀간다. 단순히 자기 세력을 넓히고 돈 버는 이야기였다면 흔하디 흔한 영지물이나 껍데기만 정통판타지인 현대판타지물이 되었을텐데 그렇게 살아남는 방법이 암흑가의 보스가 되는 길이라 흥미롭다. 초반에는 뒷골목 불량배 패거리에게도 빌빌거리지만 점차 현대인의 세일즈 감각을 살려가며 마약 운송과 고급 창관에 손을 대더니 살인, 테러, 방화, 약탈도 서.. 2022. 2. 10.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 더블린 사람들 더블린 사람들 / 제임스 조이스 지음, 이종일 옮김. 민음사 (2012) 원래 계획대로라면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은 순서대로 읽어나가려고 했는데, 그러다보니 진도가 안나간다. 중간에 토마스 만이나 사르트르가 끼어들면 그 산 넘기가 참 힘들다고나 할까. 그래서 껀수(?)만 생기면 좀 만만해 보이는 책으로 뛰어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번에 읽게 된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 역시 그 중 하나. 어쩌다가 “제임스 조이스, 어느 더블린 사람에 대한 일대기”를 만화로 읽게 되면서 이 인간말종 천재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서 “더블린 사람들”을 낼름 집어들었다. 여러 편의 단편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대부분이 더블린에 사는 인간 군상의 모습을 표현한 내용이다. 아일랜드 사람들의 도덕적 타락, 무능, 무기력감 등을 나.. 2022. 2. 9.
사냥꾼의 고기는 썩지 않는다 사냥꾼의 고기는 썩지 않는다 / 고이즈미 다케오 지음, 박현석 옮김. 사과나무 (2017) 농학박사이자 발효학자인 저자가 야미조 깡촌 산골에 사는 친구, 욧상을 방문하며 체험한 산골생활 이야기. 길도 이어지지 않은 산 속 깊은 곳 오막살이에서 생활하는 멧돼지 사냥꾼+심마니+농사꾼의 삶을 친구이자 방문객의 입장에서 체험 한 기록이다. 일본 산촌의 전통적이며 와일드한 식생활을 여과없이 느낄 수 있다. 예전에 “오센”이라는 만화를 보며 느낀 거지만, 일본인 중에는 이렇게 옛것에 대해 약간 지나칠만큼 향수를 느끼며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꽤나 있는 듯 하다. 예를 들면 독사에게 물려놓고도 피 빨아내고 냉이하고 쑥 좀 바르면서 ‘이것이 조상의 지혜”라고 좋아하는 부분이 그렇다. 투박하고 거친 일본 전통.. 2022. 2. 6.
커피우유와 소보로빵 커피 우유와 소보로빵 / 카롤린 필립스 지음, 전은경 옮김. 푸른숲주니어 (2006) 아프리카 난민 출신의 부모 밑에서 자란 이민 가정의 2세 샘. 축제에 갈 것을 기대하던 아이에게 날아온 것은 청년 극우주의자들이 던진 화염병이었다. 독일 내에 만연한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을 어린 아이의 시선에서 바라보고, 교실에서 항상 샘을 괴롭히는 백인 아이 보리스와의 이중 갈등 구조를 통해 인종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우리나라는 ‘거의’ 단일민족 국가인데다가 이민자나 외국인 체류자라고 해도 대부분 중국 아니면 동남아시아 출신인지라 피부 색깔로 인한 차별 문제가 그렇게 엄청나게 심각하지는 않다. 어떤 아이가 피부색이 검은 친구에게 “빨리 와, 검둥이 새끼야!”라고 소리지르자 식겁했는데 그 학생이 “뭐래.. 2022. 2. 3.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 C.S.루이스 지음, 김선형 옮김. (2018) 신비한 검색 알고리즘의 인도는 유튜브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터키쉬 딜라이트에 대해 알아보다가 나니아 연대기를 찾고, 나니아 연대기에서 자연스럽게 C.S.루이스로 이어지며 그가 쓴 "스크루테이프의 편지"까지 손이 닿았다. 나니아 연대기로 인해 얻는 명성으로 판타지 소설 작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의 본업은 신학자. 더 정확히 말하면 기독교 변증가, 즉 종교를 철학적으로 이해하고 분석하는 사람이다. 이 책은 악마 스크루테이프가 그의 조카에서 쓴 편지를 모은 서간문집의 형태로 되어 있다. 그 편지를 통해 스크루테이프는 어떻게 해야 인간을 타락시킬 수 있는지, 또 원수(하나님)의 작전을 회피하고 저지하려면 어떤 계책을 써야 하는지에 대해 .. 2022. 1. 29.
가을철 한정 구리킨톤 사건 가을철 한정 구리킨톤 사건 /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문학동네 (2017) 갈수록 사건의 스케일도 커지고, 인간관계의 치열함도 커지지만 소소한 트릭만큼은 변하지 않는 소시민 시리즈, 그 세번째. 전작에서 사귀지도 않은 주제에 이별했던 오사나이와 고바토. 여기에 신문부 부원인 우리노가 등장하면서 어설픈 아마추어와 ‘혼모노’의 차이를 보여준다. 소시민이 되기를 바라지만 머리가 너무 잘 굴러가서 억지로 꾹 자제해야 소시민 흉내를 낼 수 있는 캐릭터가 점점 마음에 드는 중. 물론 맛있는 먹거리와 귀여운 표지 역시 여전히 마음에 든다. “사각 칠기 접시에 얌전히 놓인 구리킨톤 두 알. 차분한 노란색으로 알이 굵다. 질끈 묶은 찻수건처럼 맞물린 주름이 앙증맞다. (중략) 훌륭하다. 밤의 풍미가 입안에.. 2022. 1. 26.
후각과 환상 후각과 환상 / 한태희 지음. 중앙books (2021) “나귀가 지나가는 좁은 골목을 따라간다. 구시가지의 어느 허름한 건물 입구, 안내인이 이름 모를 풀 한 움큼을 건넨다. 그의 손짓에 따라 풀을 코에 갖다대자 달콤하고 상쾌한 민트향이 스며든다. 계단을 오르자 곧 깨닫는다. 이 향기로운 환대의 이유가 실은 어마어마한 악취 때문이라는 것을. 3층 발코니 아래를 내려다보니 거대한 벌집을 닮은 가죽 염색 작업장이 펼쳐진다. (중략) 본격적인 염색 처리 전 가죽을 소의 오줌과 비둘기 똥이 들어간 용액에 이틀 정도 담가 두면 가죽이 부드러워지고 염료가 잘 스며드는 상태가 된다고 한다. 민트 송이를 파고드는 강렬한 냄새의 정체는 그야말로 맨살과 똥오줌이 섞인 생명체의 노골적 모습이다.” “대성당을 마주한 광장 .. 2022. 1.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