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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Nonfiction_비소설85

후각과 환상 후각과 환상 / 한태희 지음. 중앙books (2021) “나귀가 지나가는 좁은 골목을 따라간다. 구시가지의 어느 허름한 건물 입구, 안내인이 이름 모를 풀 한 움큼을 건넨다. 그의 손짓에 따라 풀을 코에 갖다대자 달콤하고 상쾌한 민트향이 스며든다. 계단을 오르자 곧 깨닫는다. 이 향기로운 환대의 이유가 실은 어마어마한 악취 때문이라는 것을. 3층 발코니 아래를 내려다보니 거대한 벌집을 닮은 가죽 염색 작업장이 펼쳐진다. (중략) 본격적인 염색 처리 전 가죽을 소의 오줌과 비둘기 똥이 들어간 용액에 이틀 정도 담가 두면 가죽이 부드러워지고 염료가 잘 스며드는 상태가 된다고 한다. 민트 송이를 파고드는 강렬한 냄새의 정체는 그야말로 맨살과 똥오줌이 섞인 생명체의 노골적 모습이다.” “대성당을 마주한 광장 .. 2022. 1. 21.
음식을 공부합니다 문화인류학자인 저자가 음식 공부를 하는 방법에 대해 서술한 책. 이름과 어원을 분석하고, 제조 과정과 유행 시점을 찾기 위해 문헌을 수집하며, 지역적으로 특색있는 음식인지 아니면 전국적으로 공유되는 음식인지를 파악하는 등 저자가 지금까지 출간한 음식인문학 서적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집필되었는지를 잘 알수있게 해준다. 이렇게 말하면 굉장히 딱딱하고 재미없는 연구방법론 개론서처럼 들리는데, 실제로는 각각의 공부법을 흥미로운 사례들 - 예를 들어 불고기의 기원이나 전어의 제철, 짜장면의 프로파간다 등 -을 통해 알려주기 때문에 굳이 공부가 아니라 교양서로도 가치가 있다. 다만 음식이라는 것은 저자가 말했듯이 식품공학, 영양학, 농축수산학과 같은 이과 계열부터 역사, 경제, 사회문화와 같은 인문학적 요소들이 복잡.. 2022. 1. 8.
빵은 인생과 같다고들 하지 빵은 인생과 같다고들 하지 / 윌리엄 알렉산더 지음, 김지혜 옮김. 바다출판사 (2019) “딱딱하고 누런 빵을 조금 떼어 입에 넣었다. 갈색으로 노릇노릇 익은 껍질은 한입 베어 물자 만족스럽게 부서졌다. 정말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게다가 물리학을 부정하기라도 하듯 바삭바삭한 동시에 쫄깃했다. 처음에는 치아, 그 다음 혀의 순서로 천천히 음미해야 할 빵 껍질이었고, 지금까지 맛보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천연의 단맛과 이스트 향이 났다. 빵 속도 껍질 못지않게 맛있었다. 정제된 흰 밀가루와 통밀의 중간쯤 되는 것 같았고 투박한 느낌이 났다. 거친 질감이었지만 공기구멍이 많아 폭신한 느낌 덕분에 부담스럽지 않았고, 풍부한 감칠맛이 있으면서 씹을 때 적당한 묵직함이 느껴졌다. 흰 밀가루 빵처럼 입안에 들러붙지.. 2022. 1. 6.
쿡쿡 쿡쿡 / 이욱정 지음. 문학동네 (2012) 세상에는 나같은 사람 참 많다는 걸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만드는 책. 국수 다큐멘터리 ‘누들로드’로 유명한 이욱정PD가 방송국 쉬면서 르 꼬르동 블루에서 요리 배운 이야기를 책으로 펴냈다. 요리학교의 학생으로서 느낀 점과, 평소 PD로서 생각하던 점이 절반씩 섞인 에세이. 의외로 요리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이라거나 런던에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요리학교는 요리사가 되기 위한 과정인 동시에 요리사에 대한 환상을 깨는 과정인지 모른다. 르 코르동 블뢰의 수많은 요리사 지망생들이 런던행 비행기 안에서 품었을 환상은 주방에서 결코 연출되지 않았다.” 푸드 스토리텔러인 내게는 ‘요리하는 스토리텔러를 꿈꾸며’라는 3장의 제목이 심금을 울린다. 비록 .. 2021. 12. 21.
혼밥 자작 감행 혼밥 자작 감행 / 쇼지 사다오 지음, 정영희 옮김. 시공사 (2019) 일본은 만화의 왕국이다보니 음식 만화, 요리 만화 역시 다양하게 만들어지고 그 인기 또한 높다. 오죽하면 우리나라 TV방송국의 모 요리프로그램 우승자가 요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일본의 요리 만화책이었을까. 그래서 요리 만화가가 쓴 음식 에세이도 꽤 많이 나오는 편이다. 이를 보고 있으면 작가가 아니라 만화 캐릭터가 자신의 단상을 쓰는 것 같아 재미있는 기분도 든다. “나는 이자카야에서 찌그러져 있는 것을 취미로 삼고 있다. 혼자 들어가 다들 즐겁게 왁자지껄 마시는 모습을 어두운 눈초리로 흘깃흘깃 바라본다. 그런데 이게 즐겁다. 어두운 눈매를 하고 있는 내 자신이 몹시 귀엽다. 이런 이상한 취미의 소유자다.” 이런 수상쩍은(?) 취.. 2021. 12. 14.
요리 본능 요리 본능 / 리처드 랭엄 지음, 조현욱 옮김. 사이언스북스 (2011) 불에 익혀 먹는 행위가 인간의 진화와 사회 형성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려주는 책. 군데군데 논리적 비약이 좀 심하거나 저자의 주장에 맞게 사실을 꿰어맞추는 경향이 살짝 보이기는 한다. 책에서 수많은 문장들이 ‘~했을 것이다’로 끝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도 전반적으로 영양학적, 진화론적, 사회학적 근거를 풍부하게 제시한다. 다만 “음식을 불에 익혀 먹음으로써 더 많은 영양소를 섭취하고, 소화하는데 드는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었다. 이 덕에 사회 관계 - 특히 결혼 생활 - 구축이 가능했다.”라는 주장을 제시하는데 320페이지가 넘는 책이 필요한지는 의문이다. 물론 이와 관련된 논문이나 학술적 연구를 하는 사람에게는 책 한권.. 2021. 11. 24.
왜 맛있을까: Gastrophysics 왜 맛있을까 / 찰스 스펜스 지음, 윤신영 옮김. 어크로스 (2018) 파타고니아 이빨고기는 칠레산 농어로 이름을 바꾸자 판매량이 1000퍼센트 이상 증가했다. 똑같은 와인을 마셔도 비싼 가격표를 붙인 와인을 마실 때면 뇌의 보상 중추가 활발하게 반응한다. 썬칩 봉투를 흔들면 무려 100데시벨의 소음을 낸다. 과자의 바삭함을 강조하기 위해서. 심지어는 접시에 놓인 양파 요리의 끝부분이 12시 방향을 가리키느냐 3시 방향을 가리키느냐에 따라 사람들이 지불하고자 하는 음식값이 달라진다. 이 책은 이렇게 후각, 시각, 청각과 촉각은 물론이고 식사를 하는 환경과 사회적 경험 등 맛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해 다룬다. 음식의 맛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소에 대해 항상 관심을 갖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훌.. 2021. 11. 18.
어떤 돈가스 가게에 갔는데 말이죠 어떤 돈가스 가게에 갔는데 말이죠 / 이로 지음. 난다(2018) “지금부터 이 책의 마지막 장까지 돈가스만, 일본의 돈가스 가게만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돈가스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어떤 말은 돈가스와 아무런 관련이 없을 터입니다. 돈가스와 상관없는 생각마저 돈가스가 불러오죠. 쓸데없을 정도로 구체적이어서 요리에 대한 쓸모없는 이야기를 듣고 싶은 사람과 손뼉 치며 나누는 글이 되었으면 합니다.” 글의 서문에 나왔듯이, 저자가 일본의 여러 돈가스 전문점을 돌아다니며 먹고 이에 떠오르는 단상을 적은 책이다. 하지만 음식이나 식당에 관한 책이라고 하기에는 잡상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듯 하다. 깊은 고찰을 통해 나오는 말이 아니라 그 순간순간 머리를 스쳐지나가는 생각을 그대로 붙잡아 박제한듯한 서술의 연속이.. 2021. 11. 16.
오컬트, 마술과 마법 오컬트, 마술과 마법 / 크리스토퍼 델 지음, 장성주 옮김. 시공사 (2017) 마법에 대한 모든 것을 담아놓은 책. 고대, 그리스와 로마, 북유럽, 중세, 르네상스, 계몽주의 시대, 현대의 마법 등을 두루 살핀다. 다만 워낙 광범위한 분야를 총망라하기 때문에 개별적인 항목에 그렇게 많은 지면을 할애할 수 없고, 그 결과 오컬트적 지식을 심도있게 다룬다기보다는 역사적으로 유명했던 마법사나 많은 사람들이 믿었던 마법 이론 등을 소개하는 수준에 그친다. 예를 들어 “17세기의 마법서, 의 첫 권인 소환술(Ars Goetia)에는 악마 72종의 명단과 각각의 인장이 실려 있다”는 내용은 있지만 그 악마들의 구체적인 명단과 인장은 일부만 발췌하여 사진 자료로 첨부하는 식. 따라서 실질적인 마법서로 보기보다는 마.. 2021. 11. 11.
바나나 키친 바나나 키친 /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민음사 (2012) “어린아이라고 해서 어줍잖게 대하면 반드시 전해진다. 너저분하게 대충 담거나 양념을 적당히 하면 먹지 않는다. (중략) 꼬맹이가 일어난 후에 접시를 식탁에 올려놓았더니, 없어! 꺼내! 라기에 대체 뭐가 없는 거지, 하고 생각했는데, 꼬맹이 전용 포크가 놓여 있지 않은 게 마음에 안 들었는지 제 손으로 서랍을 열어 가져왔다. 그러고는 오물오물 냠냠 먹었다. 그렇구나. 예쁘게 담겨 있으니까 포크도 평소처럼 설거지 해둔 아무것이나가 아니라 자기 것이 있어야 하는구나,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라타투이는 며칠이 지나도 상하지 않고, 시원하게 먹어도 맛있고, 파스타나 피자에도 사용할 수 있는 데다, 먹다 남은 여름 채소는 뭐든 쓸 수 있.. 2021. 11. 10.
마이 코리안 델리 마이 코리안 델리 / 벤 라이더 하우 지음, 이수영 옮김. 정은문고 (2011) 뉴욕에 사는 미국인이 한국인 아내와 처가 식구들과 함께 조그만 슈퍼마켓(델리)을 운영하며 겪는 이야기. 외국인의 시선으로 한국인과 한국문화를 통찰하다 못해 아주 깊숙히 파고들며 생활의 일부가 되는 것도 흥미롭고, 뉴욕시 특유의 조그만 델리에서의 삶은 마치 “매일 갑니다, 편의점”에서 읽었던 편의점 사장님의 일상을 보는 듯한 기분도 든다. “처가살이를 하게 되는 것도 꽤 부끄러웠지만, 스태튼 아일랜드로 이사를 간다는 것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스태튼 아일랜드는 뉴욕 시를 이루는 다섯 개 지역 가운데 하나이건만, 불가촉천민처럼 외면을 받는 지역이었다. 한때는 유행하거나 멋져보였던 것들이 사망 직전에야 들어오고, 스타벅스는 커녕 .. 2021. 10. 12.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청아출판사 (2005)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나치의 수용소에서 죽었지만 적지 않은 수는 살아남아서 자신들의 경험을 후세에 전하는 데 성공했다. 꽤나 많은 책과 영화들이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수용소에서의 삶을 보여주는데 전혀 다른 사람들이 묘사한 그 내용이 서로 놀라울 정도로 흡사하다. 물론 수용소에서의 삶이라는게 군대나 교도소처럼 철저히 통제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공통점이 많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긴 하다. 건더기 없는 멀건 국과 특식으로 나오는 손가락만한 소시지, 전기 철조망에 뛰어들어 자살하는 사람들, 카포(죄수 감독관)들의 횡포는 아우슈비츠 어디에서나 똑같은 풍경일 테니까. 하지만 아무리 똑같은 환경에 처하더라도 다양한 사람들이.. 2021. 3.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