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592 여행 가는 날 여행 가는 날/ 서영 지음, 위즈덤하우스(2018). 밤 늦은 시각, 할아버지의 집 문을 두들긴 낯선 손님. 하지만 할아버지는 이 손님을 오랫동안 기다린 듯, 반갑게 맞이하며 길 떠날 채비를 한다. 장롱 밑의 비상금 동전들을 효자손으로 꺼내 모으고, 깨끗하게 목욕도 하며 먼 길을 떠난다. 아동 독자를 대상으로 한 그림책이기에 아이들이 낯설 수도 있는 '죽음'이라는 개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도와주는 책. 하지만 어른이 읽어도, 처음 몇 페이지만 읽어도 '여행'의 실체를 알게 됨에도 불구하고, 가슴 따뜻해지는 감동을 선사한다. 할아버지는 이야기를 나누느라 정신없는 통에 달걀이 다 익지도 않았을 텐데 봉지에 가득 담았어요. - 여행 가는 날, 10p 여행 중에 길안내 손님과 나눠먹을 달걀 일곱 개를 삶는.. 2022. 12. 13. 판타지 소설 리뷰: 2회차 기사가 살아가는 법 지구에서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던 주인공이 갑자기 판타지 세계로 떨어졌다. 조그만 장원의 기사, 윌리엄으로 빙의했지만 급변하는 시대에 이리저리 휩쓸리다가 결국 산적으로 전락. 그걸로도 모자라서 쉽사리 토벌당하며 한많은 생을 마친다. 그리고 (당연히) 판타지 세계 2회차 시작. 전생에는 없었던 상태창이 해금되면서 적들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미니맵'이라는 사기적인 능력까지 보유하게 된다. 자신의 뒷통수만 치려고 호시탐탐 노리는 영주민들을 버리고 홀홀단신 떠나며 항구도시 칼마르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주인공. ---------------------------- "좋습니다. 능력있는 사람은 언제나 필요하지요. 전투에 능숙하다. 그렇게 보일 나이는 아니지만 본인이 그렇다고 주장하니 믿어드리지요. 그런데 윌.. 2022. 12. 6. 뉴욕 레시피 뉴욕 레시피 / 이준 지음, 청어람 (2011) 서울의 미슐랭 레스토랑, 스와니예를 만든 이준 셰프의 뉴욕 요리학교 생활 이야기. 마이클 콜먼이 지은 ‘셰프의 탄생’이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궁금해할법한 CIA에서의 생활을 보여준다면, 이 책은 좀 더 개인의 감상과 발전상에 초점을 맞춘 느낌이다. 일기나 자서전과 비슷한 분위기. 그래서인지 이준 셰프 개인으로서 겪은 인생 역정이나 도전과 성공 이야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CIA 커리큘럼이나 뉴욕 유학생의 삶에 대한 책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을 듯. 그래서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읽느냐에 따라 만족도가 많이 달라지는 책이기도 하다. 개인적인 감상이라면 대다수 사람들은 공감하기 힘든 학교에서 뭘 가르치는지, 어떤 요리를 배웠는지에 대한.. 2022. 12. 4. 현대판타지 소설 리뷰: 힐러인데 정치만렙 사상 최악의 역삼 게이트를 클리어하기 위해 투입된 힐러, 권윤기. "나는 그 비장미 넘치는 파티에 막차로 합류한 불운아였다. 정부에서는 B급 힐러였던 나를 여명파티에 넣기 위해 속성으로 승급시켰다. 치유능력만 보면 A급이 낭낭하다는 것이 승급의 명분이었다. 아마 위험한 작전에 B급을 투입했다는 지적을 피하고 싶었던 거겠지. 씨발년들. 소고기 등급도 그딴 식으로 책정하지는 않을 텐데." 죽을 고생을 하며 단 두명의 생존자만을 남긴 채 클리어한 역삼 게이트. 그런데 3개월에 걸친 토벌 끝에 사회로 복귀해보니 바깥 세상은 벌써 10년이 지난 상황. '저 어린 것을 혼자 두고 죽을 수는 없다'며 주인공이 이 악물고 게이트를 깨도록 만들었던 여동생은 어느 새 S급 헌터가 되어 헌터협회 회장직을 차지하고 돈을 쓸어.. 2022. 11. 28. 현대판타지 웹소설 리뷰: 재벌집 만렙 아들 원래 제목은 '전직 사채왕'이었는데 어그로가 팍팍 끌리는 '재벌집 만렙 아들'로 변경한 소설. 큰 틀은 재벌집 막내 아들과 꽤나 비슷하다. 나름 착하게 살던 사채업자가 죽어서 재벌집 손자로 환생하고, 전생의 지식을 바탕으로 돈을 긁어모으며 재벌가에서의 입지를 굳히고 각종 사업에서 성공하는 내용. 여기에 도우미 저승사자가 따라붙고, 돈 될만한 것은 황금빛으로 보이는 등의 잡스러운(?) 보조 시스템이 있긴 하지만 주된 내용은 이제 막 환생한 꼬맹이가 어른들 쥐락펴락하며 돈 벌고 권력 잡는 줄거리다. 어쩌다보니 옆집 아저씨가 중앙정보부 요원이었고, 어쩌다보니 그 아저씨가 대기업 비리를 캐다가 죽을 운명이었고, 겸사겸사 그 아저씨 목숨도 구해주고 대기업 비리장부를 미끼로 할아버지와 거래하며 입지를 굳히는 식으로.. 2022. 11. 23. 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 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 / 케이틀린 도티 지음, 임희근 옮김. 반비 (2020) 몇몇 직업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만 풀어놓아도 재미있는 책 한권이 나오곤 한다. 그리고 그 중 하나로 장의사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어릴 적 목격한 죽음이 깊은 트라우마로 자리잡은 작가가 그에 이끌려 장의사 - 더 정확하게는 웨스트윈드 화장 및 매장 회사에서 일하며 겪은 일과 생각들을 적은 책이다. 죽음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지만, 사람들은 더 이상 죽음을 직시하지 않는다. 그 결과, 죽은 사람을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죽은 사람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행해지는 방부 처리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여러 종류의 사연을 갖고 들어온 시체들의 이야기 - 8개월 된 아이의 머리카락을 잘라 부모에게 보내는 일부터 노인이 자신.. 2022. 11. 11. 영국 메이드의 일상 영국 메이드의 일상 / 무라카미 리코 지음, 조아라 옮김. AK커뮤니케이션즈 (2017) 일본 사람들의 메이드에 대한 동경은 그 역사가 꽤나 깊다. 탈아입구를 외치며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던 그 시기부터 메이드는 일종의 “잘 발달된 산업사회의 상류층이 필수적으로 가져야 할 인력자원”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다보니 19세기와 20세기에 걸친 영국의 메이드 생활상을 살펴보는 이런 책이 나오는 것도 그렇게 신기한 일은 아닌 듯 싶다. 그리고 흥미삼아 읽기 시작했지만 의외로 재미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빈곤한 시골 소녀들이 상경해서 남의 집 하녀로 일하며 겪는 온갖 일상이 당대의 영국 사회상을 반영할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있었던 ‘남의 집 식모살이’와도 연결되는 기분이라 ‘어딜 가나 사람 사는 모습이.. 2022. 11. 3. 셰프의 탄생 셰프의 탄생 / 마이클 룰먼 지음, 정현선 옮김. 푸른숲 (2013) CIA 요리학교에서 수업을 들으면서 ‘언젠가는 이 모든 것을 글로 써낼 날이 오겠지’라고 생각하곤 했는데, 그 일을 먼저 해 버린 사람이 있었다. 마이클 룰먼은 아예 입학할 때부터 작가로서 요리학교에서의 삶을 책으로 쓰기 위해 뚜렷한 목적의식을 갖고 CIA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이다. 그래서 그의 책은 섬세한 관찰력을 바탕으로 하는 현실감 넘치는 묘사와 풍부한 인터뷰로 가득하다. 개인적으로 저자가 ‘작가 특권’을 사용했기에 가능했으리라 생각하는 부분이다. 서비스 시작을 10분 남겨놓고 눈돌아가게 바쁜 와중에 옆의 학생에게 이것저것 자꾸 물어본다면 그 손에 들고있던 도구 - 국자나 스페츌러나 스푼 -으로 얻어맞을 각오를 해야 할 테니까. .. 2022. 10. 29. 현대판타지 소설 리뷰: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 (갱신) 어릴 적 사회 교과서에서 '정당'의 정의를 '정권을 잡기 위해 모인 단체'로 규정하는 것을 보며 실망한 적이 있다. '정당의 목표는 국가의 발전과 국민의 행복을 위하는 것이 아니었던가?'라는 순진한 생각을 하면서. 하지만 국가의 발전과 국민의 행복에는 여러 가지 모습이 있고, 자신이 옳다고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권력을 잡을 필요가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정치라는 행위 자체가 제한된 자원,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돈과 권력을 적재 적소에 배분하는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에 정치인은 대중들이 좋아할만한 이미지를 유지하면서도 뒤쪽으로는 협박과 협력, 설득과 뇌물, 이중계약과 경쟁을 밥먹듯이 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정치를 소재로 하는 대다수의 소설은 상당히 판을 쉽게 짜 버리는 경향이 있다... 2022. 10. 27. 판타지 소설 리뷰: 평화로운 먼치킨 영지 유치하다는 건 보통 단점이지만, 간혹 그 특유의 유치한 맛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장점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똥’이나 ‘방귀’라는 단어만 들어도 배꼽 잡고 웃는 것은 한편으로는 유치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웃음 코드를 잘 잡은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누가 내 머리 위에 똥쌌어?”라는 동화가 그렇게 인기를 끌었을지도 모르겠다. 똑같은 줄거리라도 머리 위에 똥 싼 범인을 찾는 것이 평범한 물건을 훔친 동물을 찾는 것보다 재미있다. 웹소설계에서도 간혹 이와 비슷한 작품들이 등장한다. 평화로운 먼치킨 영지. 딱 제목만 봐도 ‘먼치킨’ 주인공이 적들을 썰어버리며 자신의 영지를 키워나가는 내용이다. 소설 시작하자마자 마왕 제라피스를 단번에 잡아 죽이는 대마법사 아인 하스터. 마왕의 심장을 재료로 써서 .. 2022. 10. 19. 현대판타지 소설 리뷰: 하극상한 은행원이 너무 유능함 평범한 은행원이었던 주인공. 어느 날 갑자기 대출 서류를 보는 순간 해당 기업이나 개인의 신용 정보가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 예측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 그야말로 금융계 치트키라고 할 수 있는 수준. 하지만 은행원 본분에 맞게 그 능력으로 부실 대출을 잡아내거나 특별 금리로 대출해주는 등 돈 버는 것이 아닌, 은행원이라는 직업을 최대한 살린 행보를 이어나간다. 다른 무엇보다도 은행원이라는 직업 특유의 전문성으로 글을 이어나가는 게 장점이었는데... 중간에 갑자기 은행 때려치우고 투자 회사 설립하면서 글이 완전 무너져버렸다. 직업 특화로 재미있었던거지, 필력이 무시무시하다거나 글이 엄청나게 흡입력있었던 게 아니기 때문. 이게 은행원으로는 도저히 이야기 전개가 안되니까 무리수를 던진 거 아닌가 싶은데, 결과적.. 2022. 10. 15. 디저트의 모험 디저트의 모험 / 제리 퀸지오 지음, 박설영 옮김. 프시케의 숲 (2019) 디저트에 대한 거의 모든 ‘인문사회학적’ 지식을 집대성한 책. 초점이 서양의 디저트 발전사에 맞춰지긴 했으나 동양에서는 디저트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렇게 치명적인 편향성은 아니지 싶다. 곳곳에 레시피를 첨부하기는 했지만 요리책은 아니다. 그보다는 디저트가 발명되고 진화하던 당시의 사회상을 보여주며 ‘요리 역사’의 전문가답게 “왜 이런 디저트가 인기를 끌었고, 이 음식들이 사람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고, 우리가 사는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켰나”에 대한 질문과 해답을 제시한다. 음식 사진 뿐만 아니라 요리 도구, 상품 광고, 오래된 삽화 등 다양한 자료를 첨부해서 현실감있게 읽을 수 있다. 다만 책 자체가 재미.. 2022. 10. 14. 이전 1 ··· 7 8 9 10 11 12 13 ··· 5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