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592 혼밥 자작 감행 혼밥 자작 감행 / 쇼지 사다오 지음, 정영희 옮김. 시공사 (2019) 일본은 만화의 왕국이다보니 음식 만화, 요리 만화 역시 다양하게 만들어지고 그 인기 또한 높다. 오죽하면 우리나라 TV방송국의 모 요리프로그램 우승자가 요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일본의 요리 만화책이었을까. 그래서 요리 만화가가 쓴 음식 에세이도 꽤 많이 나오는 편이다. 이를 보고 있으면 작가가 아니라 만화 캐릭터가 자신의 단상을 쓰는 것 같아 재미있는 기분도 든다. “나는 이자카야에서 찌그러져 있는 것을 취미로 삼고 있다. 혼자 들어가 다들 즐겁게 왁자지껄 마시는 모습을 어두운 눈초리로 흘깃흘깃 바라본다. 그런데 이게 즐겁다. 어두운 눈매를 하고 있는 내 자신이 몹시 귀엽다. 이런 이상한 취미의 소유자다.” 이런 수상쩍은(?) 취.. 2021. 12. 14.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 / 로버트 뉴턴 팩 지음, 김옥수 옮김. 사계절출판사 (2017) 주인공의 경험을 투영한 자전적 소설인 동시에 성장소설. 미국 개척기 소설을 읽다보면 동화적이고 순박한 기쁨과 냉혹한 현실이 범벅이 되어 뭐라고 형언하기 어려운 감상이 들 때가 많다. 주인공 로버트는 이웃집 소가 출산하는 것을 돕고 돼지 한 마리를 얻게 된다. 소설 내내 돼지를 애지중지 기르며 미국의 농촌에서 있을 법한 여러 일들을 겪고 성장하는 주인공. 시골 축제에서 돼지가 상을 받으며 즐거워하는 것도 잠시, 곧이어 닥친 겨울동안 사슴을 사냥하지 못해 할 수 없이 돼지를 잡아먹게 된다. 읽다보면 ‘이게 대체 뭔가…’ 싶은데, 마치 요술공주가 트럭에 치여 죽는 전개를 보는 듯한 기분이다. 하지만 이런 것이 미.. 2021. 12. 9. 판타지 소설 리뷰: 1만시간 무과금러가 해적으로 살아남는 법 영국의 유명한 작가인 아서 C. 클라크는 세 가지 법칙을 제시했는데, 그 마지막 법칙은 우리에게 꽤나 친숙하다: “충분히 발달한 (과학)기술은 마법과 구분할 수 없다.” 판타지 세계에 등장하는 마법이나, 미래 세계의 과학 기술이나 사람들이 상상하고 원하는 바를 그려낸다는 공통점이 있기에 궁극적인 모습은 비슷할거라는 예측이 신뢰를 얻는다. 그리고 작가가 전작에서 우주 게임의 함장으로 빙의한 플레이어 이야기를 하다가 이번에는 판타지 게임의 함장으로 빙의한 플레이어 이야기를 시작한 데는 이러한 유사점에서 오는 자신감이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소설의 주인공 리안은 이래저래 난장판인 조그만 영지, 레온 백작령의 계승 예정자. 하지만 눈엣가시를 제거하기 위한 백작 부인의 음모로 인해 해적들에게 납치당하고, 그.. 2021. 12. 7. 판타지 소설 리뷰: 몰락한 방랑기사 #중세판타지 #백설공주 #동화의재해석 #로우파워 이미 널리 알려진 동화의 뒷이야기를 다루는 건 언제나 흥미롭다. 비록 ‘잔혹동화’라는 이름으로 되도 않는 줄거리를 잔인한 장면만 잔뜩 집어넣어 성인용이랍시고 내놓는 아류작들도 많지만, ‘오즈의 마법사’의 숨겨진 이야기를 풀어놓은 ‘위키드’나 너무나 그럴듯하게 상상한 나머지 실화로 착각하는 사람도 많았던 ‘황홀한 사기극: 헨젤과 그레텔의 또 다른 이야기’처럼 기존에 알던 사실을 뒤집어 놓으며 신선한 충격을 주는 작품들도 많다. 이 소설 역시 백설공주 동화를 기반으로 굉장히 현실적인 중세 배경 판타지를 엮어 나간다. “마틴, 네 누이가 기억나느냐? 마르가르테 말이다.” “매기, 스노우 화이트 말씀입니까?” “스노우 화이트. 그래, 그렇게 많이들 불렀었지. 눈처.. 2021. 12. 5. 49일의 레시피 49일의 레시피 / 이부키 유키 지음, 김윤수 옮김. 예담 (2011) 오토미가 죽고 남겨진 남편 아쓰타와 전처 소생의 딸 유리코. 그리고 오토미의 부탁을 받았다며 49재가 끝나는 날까지 집안일을 돕겠다는 금발 썬탠 소녀, 이모토. 유리코는 바람 핀 남편과의 이혼을 고민하고, 아쓰타는 오토미의 빈자리를 새삼 깨달으며 외로워한다. 그리고 오토미가 생전에 남긴 살림법과 요리 레시피 카드를 보며 한 걸음,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간다. 세상을 떠난 사람의 흔적과 손길이 살아있는 사람들을 치유한다는 점에서 “러브레터”나 “p.s. I love you”가 떠오르기도 하는 소설. 유리코가 결국 남편과 재결합하는 부분은 일본 감성이라 그런가 좀 이해가 안 되기도 하고, 마지막 반전은 의외로 좀 뻔한 반전이라 어지간하면.. 2021. 12. 3. 판타지 소설 리뷰: 폭군 기사단장은 살아남고 싶다 #판타지 #소설빙의 #금욕주의먼치킨 #에서벗어나고싶은주인공의몸부림 이세계로 소환되어 먼치킨물 찍고 하렘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판타지 애독자라면, 한 번 쯤은 19금 성인용 소설의 주인공 캐릭터로 빙의되는 것도 상상해볼 법 하다. 소꿉친구 소녀에서부터 주점의 여종업원, 비키니 아머를 입은 전사, 미녀 마법사, 힐러 여사제, 엘프, 수인족, 심지어는 서큐버스로도 모자라서 미녀 마왕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욕망이란 욕망은 모조리 형상화시킨 것이 요즘 성인 판타지 창작물의 대세!...라고 친구가 말하는 것을 들었다. 이 소설 역시 주인공이 즐겨 읽던 성인용 판타지 소설, ‘최강성기삽니다’의 캐릭터로 빙의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다만 문제는, 초반부에 하차하는 악당인 꼰대 기사단장 ‘에드워드 폰 튜튼’이 되어버렸다.. 2021. 12. 2. 판타지 소설 리뷰: 용사를 죽이시오 #판타지 #먼치킨 #말많은놈은죽는다 20년간 변방 협곡에서 괴물들을 몰살시키며 시간을 보낸 웨나토르. 자신의 조카딸이자 갈레드리온 대공인 아달헤디스의 부탁을 받고 배신자 용사를 죽이기 위해 길을 떠난다. 용사와 마왕이 존재하는 세상이 법과 질서에 의해 수호받을 리는 없는 법. 길거리에는 강도가 돌아다니고 길이 아닌 곳에는 괴물이 돌아다니는 야만의 시대다. 그리고 이 폭력이 난무하는 여행길을, 먼치킨 주인공 웨나토르가 현실적으로 헤쳐나가는 재미가 있다. 먼치킨이 현실적이라니 모순 아닌가 싶지만, 큰 힘을 가진 사람이 야만의 시대에서 살아간다면 이런 식이겠구나 싶은 전개가 이어진다. “내가 왜 이런 짓을 하느냐고 묻지 않는건가?” “왜 물어봐야 하지? 네 구구절절한 사정을 내가 들어줘야 하나?” “날 만난 .. 2021. 12. 2. 봄철 한정 딸기 타르트 사건 봄철 한정 딸기 타르트 사건 /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문학동네 (2016) 음식 이름이 들어간 제목과 먹음직스럽고 귀여운 일러스트가 그려진 표지에 끌려서 읽기 시작한 책. 평범한 소시민이 되는 것을 꿈꾸는 고등학교 신입생, 고바토 조고로와 오사나이 유키. 하지만 그들이 조용히 지내는 것을 방해라도 하듯, 갖가지 소소한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추리소설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애걔, 이게 뭐야’ 싶은 허무한 결말의 연속이지만 짤막한 옴니버스식 구성에 개성있는 캐릭터들이 맞물리며 그냥저냥 가볍게 후루룩 읽기 좋은 소설인듯 하다. 개인적으로는 오사나이의 식탐이 마음에 들어서 나중에 써먹을 수 있겠다 싶은 문장 몇개를 건진 게 수확. “자전거를 도둑맞은 것과 봄철 한정 타르트를 먹지 못한 것... 2021. 11. 27. 요리 본능 요리 본능 / 리처드 랭엄 지음, 조현욱 옮김. 사이언스북스 (2011) 불에 익혀 먹는 행위가 인간의 진화와 사회 형성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려주는 책. 군데군데 논리적 비약이 좀 심하거나 저자의 주장에 맞게 사실을 꿰어맞추는 경향이 살짝 보이기는 한다. 책에서 수많은 문장들이 ‘~했을 것이다’로 끝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도 전반적으로 영양학적, 진화론적, 사회학적 근거를 풍부하게 제시한다. 다만 “음식을 불에 익혀 먹음으로써 더 많은 영양소를 섭취하고, 소화하는데 드는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었다. 이 덕에 사회 관계 - 특히 결혼 생활 - 구축이 가능했다.”라는 주장을 제시하는데 320페이지가 넘는 책이 필요한지는 의문이다. 물론 이와 관련된 논문이나 학술적 연구를 하는 사람에게는 책 한권.. 2021. 11. 24. 왜 맛있을까: Gastrophysics 왜 맛있을까 / 찰스 스펜스 지음, 윤신영 옮김. 어크로스 (2018) 파타고니아 이빨고기는 칠레산 농어로 이름을 바꾸자 판매량이 1000퍼센트 이상 증가했다. 똑같은 와인을 마셔도 비싼 가격표를 붙인 와인을 마실 때면 뇌의 보상 중추가 활발하게 반응한다. 썬칩 봉투를 흔들면 무려 100데시벨의 소음을 낸다. 과자의 바삭함을 강조하기 위해서. 심지어는 접시에 놓인 양파 요리의 끝부분이 12시 방향을 가리키느냐 3시 방향을 가리키느냐에 따라 사람들이 지불하고자 하는 음식값이 달라진다. 이 책은 이렇게 후각, 시각, 청각과 촉각은 물론이고 식사를 하는 환경과 사회적 경험 등 맛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해 다룬다. 음식의 맛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소에 대해 항상 관심을 갖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훌.. 2021. 11. 18. 어떤 돈가스 가게에 갔는데 말이죠 어떤 돈가스 가게에 갔는데 말이죠 / 이로 지음. 난다(2018) “지금부터 이 책의 마지막 장까지 돈가스만, 일본의 돈가스 가게만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돈가스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어떤 말은 돈가스와 아무런 관련이 없을 터입니다. 돈가스와 상관없는 생각마저 돈가스가 불러오죠. 쓸데없을 정도로 구체적이어서 요리에 대한 쓸모없는 이야기를 듣고 싶은 사람과 손뼉 치며 나누는 글이 되었으면 합니다.” 글의 서문에 나왔듯이, 저자가 일본의 여러 돈가스 전문점을 돌아다니며 먹고 이에 떠오르는 단상을 적은 책이다. 하지만 음식이나 식당에 관한 책이라고 하기에는 잡상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듯 하다. 깊은 고찰을 통해 나오는 말이 아니라 그 순간순간 머리를 스쳐지나가는 생각을 그대로 붙잡아 박제한듯한 서술의 연속이.. 2021. 11. 16. 판타지 소설 리뷰: 암시장의 거물이 되는 법 소설을 쓰는 사람이라면 언제나 허구와 현실성 사이에서 절묘한 줄타기를 해야 한다. 너무 비현실적인 소설은 억지스러워서 독자로 하여금 몰입할 수 없게 만든다. 주인공이 부자가 되는 과정이 6연속 로또 당첨이라면 ‘이게 뭐야’라는 반응이 절로 나올테니까. 반면에 너무 현실적인 묘사에만 치중해도 재미가 없는 법이다. 작가가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데 누가 봐도 있을 법한 일만을 쓰려고 얽매이다보면 “일기는 집에 가서 쓰세요”라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하지만 서로 대조되는 두 개념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잡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현실이 판타지네’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오는 사건이 비일비재한 요즘에는 더욱 그렇다. 오죽하면 뉴스가 영화보다 더 비현실적이라는 말이 나올까. 반대로 소설 속 인물이 비를 맞고 .. 2021. 11. 16. 이전 1 ··· 14 15 16 17 18 19 20 ··· 5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