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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채식주의자 / 한강 지음. 창비 (2007) 한 여인이 고기를 못 먹게 되면서, 주변에서 육식을 강요하고, 이에 대한 반발로 식물적인 삶에 집착하는 과정을 그려낸 소설. 많은 사람들이 이 글을 채식주의자가 겪는 사회적 갈등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실제로도 1부만 놓고 보면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각각 다른 곳에 발표되었던 세 편의 연작이 이 책 한권에 모이면서 ‘알고보니 채식주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물론 에코 페미니즘과 비건은 통하는 구석이 영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여성성과 반(反)폭력과 식물을 잘 버무린 이 소설을 에코 페미니즘이 아니라고 부정하기는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의 전개가 점차 비정상으로 빠져드는 개인 심리 묘사에 큰 비중을 두다보니 .. 2021. 10. 20.
대체역사 판타지 소설 리뷰: 내가 바로 고려천자다 #대체역사 #임진왜란 #만력제 한국에서 흙수저 인생을 살던 주인공. 어느 날 갑자기 유행도 지난 환생트럭에 치여 과거로 회귀한다. 그리고 눈을 뜬 곳은 명나라 황제의 몸 속. 하지만 황제가 되었다고 기뻐하는 것도 잠시. 임진왜란 직전의 만력제가 되어버린 것에 절망한다. 굽은 등의 통증으로 인해 아편을 주구장창 입에 달고 살면서도 힘을 내어 임진왜란을 대비하도록 한다. 중국 역사상 최대의 암군으로 꼽히는 만력제인데, 소설에서는 그 무능함의 여파가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이 아쉽다. 주인공이 빙의해서 자리 떨치고 일어나자마자 “불비불명!”을 외치며 신하들이 감격하고 따흐흑 눈물 흘리며 정사가 제대로 돌아가는데 실제로는 30년동안 파업하는 바람에 황제 얼굴도 모르는 신하가 태반이고, 때려죽인 궁녀와 환관이 천 명.. 2021. 10. 19.
복고풍 요리사의 서정 복고풍 요리사의 서정 / 박상 지음. 작가정신 (2021) 요리사와 도서관 사서라는, 참 어울리지 않는 두 가지 직업을 양립시키고 있는 입장에서 요리사와 시인이라는, 역시 만만치 않게 어울리지 않는 두 가지 직업을 엮어낸 소설을 읽으니 여러 부분에서 공감이 된다. 주인공이 이탈리아 옆의 조그만 섬나라, 삼탈리아에서 요리의 단서를 찾아 시를 풀며 겪는 여러 모험과 과거 회상이 이야기의 큰 틀이다. 소설 자체는 목욕탕 온탕만큼 뜨뜻미지근하다. 열탕만큼 뜨거운 감동이 넘쳐 흐르거나 냉탕만큼 정신 번쩍 들게 만드는 날카로운 지식의 향연은 없다. 하지만 그 뜨뜻미지근한 말장난이 편안하기에 오랫동안 눌러앉아 즐기기엔 안성맞춤이다. 게다가 중간중간 등장하는 요리에 대한 통찰은 알바 경력을 살려서 썼다고는 믿기지 않을.. 2021. 10. 17.
현대판타지 리뷰: 흙수저 집안에서 애를 낳았더니 재벌이 회귀함 #현대판타지 #회귀물 #재벌이 흙수저 되다 #아기환생 요즘 결혼하거나 아이 갖는걸 포기하는 가장 큰 이유로 경제적 궁핍을 꼽는다. 나이드신 분들은 "먹을것도 없던 6.25 전쟁 후에도 애는 잘만 낳아서 길렀어!"라지만 그것도 뭘 모를때나 가능한 일이다. 행복은 언제나 상대적이다. 내가 남을 부러워하는 게 정신 건강에 좋지 않다면, 내 자식이 갖고 싶다고 칭얼대는 것을 못 사줄때의 서러움은 영혼을 갉아먹는다. 그러니 결혼을 포기하고 아이를 포기하는 것은 내가 버는 돈 혼자 쓰고 싶은 이기심이 아니라, 부족한 경제력이 가져올 처참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하지만 신경림 시인이 말했듯, 그렇다고 사랑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 2021. 10. 12.
마이 코리안 델리 마이 코리안 델리 / 벤 라이더 하우 지음, 이수영 옮김. 정은문고 (2011) 뉴욕에 사는 미국인이 한국인 아내와 처가 식구들과 함께 조그만 슈퍼마켓(델리)을 운영하며 겪는 이야기. 외국인의 시선으로 한국인과 한국문화를 통찰하다 못해 아주 깊숙히 파고들며 생활의 일부가 되는 것도 흥미롭고, 뉴욕시 특유의 조그만 델리에서의 삶은 마치 “매일 갑니다, 편의점”에서 읽었던 편의점 사장님의 일상을 보는 듯한 기분도 든다. “처가살이를 하게 되는 것도 꽤 부끄러웠지만, 스태튼 아일랜드로 이사를 간다는 것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스태튼 아일랜드는 뉴욕 시를 이루는 다섯 개 지역 가운데 하나이건만, 불가촉천민처럼 외면을 받는 지역이었다. 한때는 유행하거나 멋져보였던 것들이 사망 직전에야 들어오고, 스타벅스는 커녕 .. 2021. 10. 12.
대체역사 판타지 소설 리뷰: 세상 흉악한 건 영국이 다 만들었다 한국인이 과거로 회귀를 하면 높은 확률로 임진왜란 내지는 일제강점기 초기에 떨어진다는 것은 학계의 정설이다. 작가와 독자가 국사시간에 배운 사실을 공유하기 때문에 추가적인 설명이나 설정이 필요없고, 16등 중에 15등을 하더라도 일본만 이기면 된다는 국민 정서는 왜놈 또는 일제를 엿먹이며 손쉬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준다. 하지만 워낙 많은 작품들이 현대 한국인을 조선시대 또는 일제강점기로 보내버리는 바람에 이제는 어느 정도 질린 상황. 그렇다고 또 아주 동떨어진 세계로 보내는 것은 대체역사의 하위분류에 속하는 "세계대전 대체역사물(일제강점기 포함)"의 장르를 벗어나게 되고, 이는 작가나 독자 모두에게 익숙치 않은 분야를 개척해 나가야 한다는 어려움을 안겨준다. 그래서 누군가가 똘똘한 생각, 즉 시간선의.. 2021. 10. 7.
판타지 소설 리뷰: 즉사기 들고 게임 속으로 #게임판타지 #즉사스킬 #쪼렙주인공 예로부터 방어를 무시하는 즉사 기술이란 일종의 로망과도 같았다. 눈만 마주쳐도 돌이 되고 죽어버리는 메두사나 바실리스크의 사안에서부터, D&D 룰북에도 나와있는 서클 오브 데스 (인내 내성 실패시 즉사) 마법, ‘반갈죽(=반으로 갈라져서 죽어)’이라는 단어로 유명한 일본의 라이트 노벨까지 꽤나 자주 등장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드래곤이 브레스 쏴서 죽이는 거나 즉사 스킬로 죽이는 거나 한 방에 죽는 것은 동일하지만 강한 캐릭터가 힘으로 밀어붙여 압살하는 것은 어느 정도 자연적인 순리에 따르는 반면 즉사 스킬은 그런 법칙을 초월하며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느낌이라 매력적이다. 그리고 이 소설의 주인공은 서비스 종료를 앞둔 게임을 마지막으로 플레이하며 자기 캐릭터의 .. 2021. 10. 5.
현대판타지 소설 리뷰: 더스트 #현대판타지 #아포칼립스 #좀비 정체 불명의 전염병으로 인해 사람들이 폭력적으로 변하고, 치료약을 접종받은 사람들이 돌연변이를 일으키며 좀비화된다. 주인공이 며칠동안 앓다가 일어나보니 이미 세상은 완전히 변한 후. 좀비와, 좀비보다 무서운 인간들과, 그 둘을 합친 것보다 더 무서운 변종들을 상대하며 생존해나가는 처절한 아포칼립스 액션물. 이거 게임으로 했으면 무서워서 벌벌 떨었겠다 싶은 호러 장면도 있고, 다양한 종류의 강화형 좀비들이 등장하기도 하고, 그런 상황에서도 주인공이 다 이겨버리는 걸 보면 왠지 레지던트 이블이 생각나기도 한다. 소소한 사건들이 지속적으로 이어지면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형식이라 큰 틀에서 보면 기승전결이 잘 짜여진 글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후반부 들어서며 세력간의 전쟁이 벌어지는.. 2021. 9. 28.
판타지 소설 리뷰: 이세계 흙수저 선원으로 살아남기 #이세계환생 #대항해시대 #머리로 승부합니다 앞을 가로막는 것 없이 탁 트인 바다, 시원한 바람, 이국적인 풍경과 신기한 문물, 그리고 여행 끝에 기다리고 있는 일확천금의 기회. 대항해 시대를 게임으로 즐긴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꿔볼만한 로망이다. 하지만 실상은? 구더기 들끓는 딱딱한 건빵, 바닷물에 씻어먹어야 할 정도로 짠 염장고기, 가혹한 노동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유일한 탈출구는 럼주 뿐인, 그러다 술기운에 실수라도 하면 무수한 체벌이 기다리고 있는 그런 생활이기도 하다. 그래서 대항해 시대를 ‘현실감있게’ 그려낸 소설은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끌기 힘들다. 현실성에 치중하면 바다에 떠도는 강제노동수용소 다큐멘터리가 되어버리고, 현실을 너무 무시하면 몰입감이 떨어질 뿐 아니라 애초에 해양소설을 쓸.. 2021. 9. 21.
판타지 소설 리뷰: 이세계서 유부남된 썰 제목만 들었을 때는 '다른 세계로 날아가 각성하며 부귀영화를 손에 넣고 아름다운 (엘프 혹은 드래곤 혹은 마왕) 아내를 맞이하는 구운몽 스타일 소설 아닌가' 싶었다. 샤방샤방한 딸내미가 귀여운 팻을 안고 돌아다니는 표지 역시 사람 헷갈리게 만든다. 하지만 정작 그 내용은 굉장히 암울한 세계관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삶의 현장이다. 주인공 김주환은 어릴적부터 부모를 잃고 불우한 삶을 사는 인생. 어쩌다 마주친 산타 복장 노인네에게 자신이 먹으려던 김밥을 나누어주자 소원을 빌라고 한다. 외로움에 사무쳐 "토끼같은 마누라와 귀여운 딸이 갖고 싶다"고 소원을 말한다. 그리고 시작된 이세계 라이프. 하지만 시작부터 우리에 갇힌 노예 신세다. 기본 언어팩을 장착시켜주는 다른 소설과는 달리, 말도 통하지 않는 이세계의.. 2021. 9. 16.
대체역사 판타지 소설 리뷰: 제국에 믿을 놈 하나 없다 #대체역사 #로마제국 #50인의환생자 #제국에 믿을 놈 하나 없다 후기 #제국에 믿을 놈 하나 없다 감상 인류가 뻑하면 세계를 멸망시키는 바람에 세이브 포인트 만들듯 역사상의 여러 분기점을 만들어 관리하는 신들. 오리지널 시간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도록 대체역사를 관리하는 것이 신의 임무지만, 어디에나 그렇듯 힘들고 어려운 일은 하청에 재하청을 거쳐 하급신에게 짬처리된다. 그리고 미숙한 하급신은 대체역사 조정을 위한 환생자 영혼을 하나 뿌리려다 실수로 오십개를 뿌리고 마는데… 안그래도 반란이 밥먹듯 일어나고 황제는 시시때때로 바뀌고 야만족이 사방에서 쳐들어오는 3세기 로마에 환생자가 50명이나 뿌려지니 원 역사에서 크게 비틀어지며 충돌이 일어나 세계가 소멸할 위기. 신은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영혼 하나에 .. 2021. 9. 14.
대체역사 판타지 소설 리뷰: 유황숙네 천재 아들 나이가 좀 있는 사람이라면 옛날 오락실의 “천지를 먹다 2: 적벽대전”을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촉나라의 오호대장군 중 한 명을 골라 적들을 물리치며 나아가는 횡스크롤 액션 게임으로, 조자룡의 승룡권이나 위연의 썸머솔트킥이 인상적이다. 개인적으로는 황충을 선호하곤 했는데, 멀리 떨어져서 안전하게 화살로 적을 잡는다는게 어린 마음에 왠지 끌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삼국지에서는 활을 주무기로 삼는 장수를 찾기란 쉽지 않다. 남자끼리 칼날을 맞대어야만 느낄 수 있는 열혈스러움 때문인지 황충을 제외하면 무력 원탑을 찍는 여포의 활솜씨 정도가 언급될 뿐이다. 하긴, 먼 미래의 로봇 병기들도 칼을 휘두르는 판국이니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이놈저놈 할 것 없이 원거리 병기로 죄다 죽여버리면 무슨 재미가 있겠나. .... 2021. 9.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