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592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 토니오 크뢰거, 트리스탄, 베니스에서의 죽음 토니오 크뢰거, 트리스탄, 베니스에서의 죽음 / 토마스 만 지음, 안삼환 외 옮김. 민음사 (2017) 책의 말미에 나와있는 작품 해설의 한 문장이 내 심경을 대변한다. “당시의 독자들은 -요즘의 독자들도 사정은 비슷하겠지만- 이 작품이 도대체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이것이 한 비범한 세공가의 공들인 작품이라는 것만은 느낄 수 있었다.” 토마스 만의 단편 모음집인데, 손에 잡힐듯한 묘사에도 불구하고 이해하는 데 꽤 심력을 소모해야 할 뿐 아니라 결국 큰 감동을 받지는 못한 내 안목의 부족함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세계문학전집을 한바퀴 돌고 나면 이해할 수 있을까? 2022. 1. 18. 판타지 소설 리뷰: 다 포기했더니 소드마스터 엑스퍼트 초급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주인공 요한. 한계를 느끼고 군대에서 나와 조그만 영지의 귀족가문 가정교사로 자리잡는다. 남작의 딸과 친해지며 약혼까지 결정된 주인공. 그제서야 놓았던 검을 다시 쥐어보며 “나는 왜 검을 쥐었지? 왜 놓았지? 그런데 왜 다시 쥐고 있지?”라고 자문자답하더니… 엑스퍼트 중급과 엑스퍼트 상급을 한 번에 뛰어넘고 곧바로 마스터의 경지에 도달한다. “벽을 넘어갔다. 검에 맺힌 불타오르는 오러의 한꺼풀이 벗겨진다. 부스스스. 소드 오러라 불리는 것이 껍질을 벗어내고. 그 속에서 대기조차 베어내는 하나의 날이 모습을 드러낸다. 사람들은 이것을 일컬어. 오러 블레이드. …마스터의 상징이라 부른다. 거기서 나는 정신을 차렸다. 어? 시발?” 비록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지만 야심을 버리고.. 2022. 1. 11. 현대판타지 소설 리뷰: 천재적 작가 시점 “넌 씨발 연기하지 마라. 차라리 초딩들 학예회 보는 게 훨씬 낫겠다. 걔네는 귀엽기라도 하지.” (중략) 음… 내가 남들에게 해줬던 조언들이잖아? [가장 가벼운 말들인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감형 사유인가요?” [뭐?] “남들을 올바른 길로 이끈 조언들이네요. 감형 사유 맞죠?” * * * 천재작가 천대호. 자신의 기준으로 배우들을 판단하고 냉정하게 조언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절망에 빠져 포기하게 만들었던 탓에 지옥에 떨어질 운명에 처한다. 다행히 선행 포인트가 많은 한 여배우가 자신의 포인트를 나누어준 덕에 과거로 돌아가 다시 한 번 살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이제 막 첫 번째 작품이 성공을 거두고, 그 후속작에 돌입하는 시점으로 회귀한 주인공. 하지만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었으니, 하나는 도.. 2022. 1. 11. 음식을 공부합니다 문화인류학자인 저자가 음식 공부를 하는 방법에 대해 서술한 책. 이름과 어원을 분석하고, 제조 과정과 유행 시점을 찾기 위해 문헌을 수집하며, 지역적으로 특색있는 음식인지 아니면 전국적으로 공유되는 음식인지를 파악하는 등 저자가 지금까지 출간한 음식인문학 서적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집필되었는지를 잘 알수있게 해준다. 이렇게 말하면 굉장히 딱딱하고 재미없는 연구방법론 개론서처럼 들리는데, 실제로는 각각의 공부법을 흥미로운 사례들 - 예를 들어 불고기의 기원이나 전어의 제철, 짜장면의 프로파간다 등 -을 통해 알려주기 때문에 굳이 공부가 아니라 교양서로도 가치가 있다. 다만 음식이라는 것은 저자가 말했듯이 식품공학, 영양학, 농축수산학과 같은 이과 계열부터 역사, 경제, 사회문화와 같은 인문학적 요소들이 복잡.. 2022. 1. 8. 빵은 인생과 같다고들 하지 빵은 인생과 같다고들 하지 / 윌리엄 알렉산더 지음, 김지혜 옮김. 바다출판사 (2019) “딱딱하고 누런 빵을 조금 떼어 입에 넣었다. 갈색으로 노릇노릇 익은 껍질은 한입 베어 물자 만족스럽게 부서졌다. 정말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게다가 물리학을 부정하기라도 하듯 바삭바삭한 동시에 쫄깃했다. 처음에는 치아, 그 다음 혀의 순서로 천천히 음미해야 할 빵 껍질이었고, 지금까지 맛보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천연의 단맛과 이스트 향이 났다. 빵 속도 껍질 못지않게 맛있었다. 정제된 흰 밀가루와 통밀의 중간쯤 되는 것 같았고 투박한 느낌이 났다. 거친 질감이었지만 공기구멍이 많아 폭신한 느낌 덕분에 부담스럽지 않았고, 풍부한 감칠맛이 있으면서 씹을 때 적당한 묵직함이 느껴졌다. 흰 밀가루 빵처럼 입안에 들러붙지.. 2022. 1. 6. 판타지 소설 리뷰: 던전 쉼터 1호점 어떤 세계관이나 설정이 인기를 끌면 그 뒤를 따르는 후속주자들도 우후죽순 생겨난다. 그리고 웹소설계 전체를 놓고 보자면, 그런 흐름에 거스르며 틈새 시장을 공략하는 소설도 나타나기 마련이다. 게이트와 헌터물이 범람하는 지금, 던전 공략중에 잠시 쉬어갈 수 있는 휴게소 이야기가 그런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 형섭은 별 능력없는 E급 각성자가 되는 바람에 상속 포기도 못하고 할아버지가 보증 잘못 서서 지게 된 12억원의 빚을 꾸역꾸역 갚아나간다. 던전 수거반으로 고되고 험한 일을 해나가며 겨우 빚을 청산한 날, 지친 몸을 이끌고 낡은 고향집으로 돌아간 주인공. 그리고 시골집 야외화장실의 문을 연 순간, 게이트를 통해야만 들어갈 수 있었던 던전 내부가 펼쳐진다. 잡다한 설정과 규칙이 섞여있지만, 결론은 .. 2022. 1. 3. 버터 버터 / 유즈키 아사코 지음, 권남희 옮김. 이봄 (2021) 여러 모로 뛰어난 미인이라고는 볼 수 없는 30대 중반의 여인, 가지이 마나코. 자신과 함께 지냈던 남자들을 연쇄 살인한 혐의로 수감중인 그녀를, 주간지 기자인 리카가 취재활동을 통해 파악하고 또 그로 인해 내면에 잠재되어있던 자신을 깨닫는다. 여성성이란 무엇인가, 남자들이 원하는 여성상이란 무엇인가, 욕망(그중에서도 특히 식욕)과 사회적 규범이 어떤 식으로 사람을 지배하는가에 대한 질문들이 얽혀가며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여성성, 그리고 남자들이 바라는 여성성의 대립이 얼핏보면 페미니즘 소설이라고 생각하게 만들 수 도 있는데… 글쎄, 개인적인 느낌이라면 페미니즘은 ‘투쟁’의 느낌이 강한 반면, 이 소설에서는 ‘자아 성찰’에 더 가까운지라 약간.. 2021. 12. 30. 대체역사 판타지 소설 리뷰: 자연주의 군벌은 무엇으로 사는가 #대체역사 #타임슬립 #현대무기 #1668년 요즘 웹소설계의 대세는 사이다를 원샷하며 느끼는 카타르시스의 향연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대체역사물만큼 갑질을 맛깔나게 해야 성공하는 장르도 흔치 않다. 하지만 ‘앞으로 벌어질 일을 모두 알고 있습니다. 완전 쩌는 미래 기술은 덤이지요.’도 한두번이지, 현대인이 과거로 떨어진다고 전지전능한 존재가 될 것인지는 의문이 생긴다. 여기에 대한 해결책으로는 현실적인 난관을 주고 슬기롭게 헤쳐나가거나, 아예 현대 기술의 산물을 왕창 들고 회귀하는 방법이 있다. 그리고 이 소설은 그 두가지를 적절히 섞는 방법을 택한다. 만재배수량 555톤의 공기부양함. 권총과 소총은 물론 개틀링까지. 그리고 노트북 안의 실용 서적들. 얼핏 생각하면 세계정복도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항.. 2021. 12. 28. 쿡쿡 쿡쿡 / 이욱정 지음. 문학동네 (2012) 세상에는 나같은 사람 참 많다는 걸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만드는 책. 국수 다큐멘터리 ‘누들로드’로 유명한 이욱정PD가 방송국 쉬면서 르 꼬르동 블루에서 요리 배운 이야기를 책으로 펴냈다. 요리학교의 학생으로서 느낀 점과, 평소 PD로서 생각하던 점이 절반씩 섞인 에세이. 의외로 요리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이라거나 런던에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요리학교는 요리사가 되기 위한 과정인 동시에 요리사에 대한 환상을 깨는 과정인지 모른다. 르 코르동 블뢰의 수많은 요리사 지망생들이 런던행 비행기 안에서 품었을 환상은 주방에서 결코 연출되지 않았다.” 푸드 스토리텔러인 내게는 ‘요리하는 스토리텔러를 꿈꾸며’라는 3장의 제목이 심금을 울린다. 비록 .. 2021. 12. 21. 대체역사 판타지 소설 리뷰: 사이코 여왕의 대영제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더 빛나게 보이도록 만드는 역사속의 조연이자 악역인 메리 1세. 일명 블러디 메리. 주인공은 바로 그 메리 여왕의 몸으로 빙의하게 된다. 원 역사에서는 가톨릭을 밀어주고 스페인 왕세자인 펠리페와 결혼하며 이래저래 영국인들의 욕을 들어먹었지만 역사를 아는 주인공이 빙의한 이상, 모두가 평행세계의 일이 되어버렸다. 커다란 하얀 그릇에는 타원형의 붉은 과실 하나가 터질듯한 자태를 자랑하고 있었다. "폐하, 이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그대에게는 낯설겠군. 이건 동방의 과실, 토마토라고 한다네." '토마토? 웃기는 소리! 이건 벨라돈나잖아!' "이제야 좀 조용히들 하는군." 그곳에 그들의 여왕이 우뚝 서 있었다. 자신의 상체만큼 거대한 전쟁망치를 들고. 여왕이 망치로 내려친 바닥은 움푹 패여있.. 2021. 12. 19. 여름철 한정 트로피컬 파르페 사건 여름철 한정 트로피컬 파르페 사건 /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문학동네 (2016) 트릭과 추리가 함께하는, 소시민을 지향하는 소년과 복수에 중독된 소녀의 모험 이야기. 트릭은 워낙 소소한데, 케이크 3개 사놓고 하나를 몰래 먼저 먹은 다음 흔적 지우고, 또 그걸 알아차리는 식이라 뭐 대단하게 발전할 건덕지가 없다. 하지만 그게 또 소시민을 추구하는 주인공의 일상과 맞아떨어지며 묘하게 어울린다.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자전거를 도둑맞았던 전편에 비하면, 그래도 불량학생들에게 납치당하는 것으로 나름 스케일이 커지긴 했지만 이야기 자체는 여전히 여름 한정 디저트 순례에 굉장히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명랑한 소리와 함께 테이블에 나온 파르페를 보고 또 한 번 간 떨어질 뻔했다. 높이가 삼십 센티미.. 2021. 12. 19. 애린 왕자 애린 왕자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최현애 옮김. 이팝 (2021) 경상도 사투리 버전으로 번역한 어린왕자. 처음에는 이게 무슨 장난인가 싶다가도, 마지막 장에 127개 언어 - 그것도 주요 언어가 아니라 방언이나 잘 쓰이지 않는 문자, 심지어는 모르스 부호까지 - 로 번역된 목록을 보고 있으면 세상에 이렇게 다양한 문화가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경상도 사투리 버전의 어린 왕자가 주는, 이미 아는 내용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처음 읽는 것마냥 생소한 그 느낌에 다시 한 번 놀란다. 표준 맞춤법으로 읽을 때는 외국인(혹은 외계인) 느낌 물씬 나던 어린 왕자가, 단지 문자만 다르게 썼는데도 어디 바닷가 백사장에 표류한 부산 얼라 느낌으로 돌변한다. 이 책을 보며 언어의 보존과 문화의 다양성에.. 2021. 12. 16. 이전 1 ··· 13 14 15 16 17 18 19 ··· 5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