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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Fiction_소설105

소리 포착기 - 맛 소리포착기 - 맛 / 로알드 달 지음, 이원경 옮김. 녹색지팡이 (2017) 직업병이라고 해도 좋을 법한 버릇이 하나 있는데, 책의 제목에 음식 이야기가 보이면 거의 조건반사적으로 읽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특히 로알드 달의 “맛”은 뮈리엘 바르베리의 “맛”을 읽고 난 다음이라서인지 더 큰 기대감을 갖고 읽기 시작했다. ‘십대를 위한 로알드 달’ 단편모음집 중 한 권인 ‘소리포착기’에 실린 글로, 포도주의 품종과 빈티지를 맞추는 내기에 관한 이야기가 그 내용이다. 사실 소설 자체만 놓고 본다면 마지막 반전이 재미있는 짤막한 글에 지나지 않는다. 로알드 달이라는 작가가 워낙에 레전드인지라 (찰리와 초콜릿 공장!) 글 자체의 재미야 보증수표이지만서도, 어린이용으로 큼직한 폰트를 사용하고 삽화를 더했음에도 15.. 2022. 2. 13.
파리 마카롱 수수께끼 파리 마카롱 수수께끼 /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문학동네 (2021) 가장 최근에 출시된 소시민 시리즈의 외전. 원래의 소시민 시리즈도 가볍게 읽을만한 내용이라 그닥 길다는 느낌은 못 받았는데 아예 훨씬 더 짧은 단편이 모여서 나오니 훨씬 더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 사건은 여전히 소소하고 - 마카롱을 세 개 주문했는데 갑자기 네 개로 늘어났다거나, 여러 개의 빵 중 하나에 머스타드를 넣는 벌칙게임을 했는데 아무도 꽝을 뽑지 않았다거나 - 그 결말 역시 알고 보면 뜬금없다거나 허무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하지만 캐릭터가 확실한 두 주인공이 디저트와 문제를 함께 해치워 나가는 그 분위기가 워낙 마음에 들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읽는다. 특히 다른 에피소드에서는 음식의 묘사에 감동받은 반면, 이.. 2022. 2. 11.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 더블린 사람들 더블린 사람들 / 제임스 조이스 지음, 이종일 옮김. 민음사 (2012) 원래 계획대로라면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은 순서대로 읽어나가려고 했는데, 그러다보니 진도가 안나간다. 중간에 토마스 만이나 사르트르가 끼어들면 그 산 넘기가 참 힘들다고나 할까. 그래서 껀수(?)만 생기면 좀 만만해 보이는 책으로 뛰어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번에 읽게 된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 역시 그 중 하나. 어쩌다가 “제임스 조이스, 어느 더블린 사람에 대한 일대기”를 만화로 읽게 되면서 이 인간말종 천재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서 “더블린 사람들”을 낼름 집어들었다. 여러 편의 단편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대부분이 더블린에 사는 인간 군상의 모습을 표현한 내용이다. 아일랜드 사람들의 도덕적 타락, 무능, 무기력감 등을 나.. 2022. 2. 9.
커피우유와 소보로빵 커피 우유와 소보로빵 / 카롤린 필립스 지음, 전은경 옮김. 푸른숲주니어 (2006) 아프리카 난민 출신의 부모 밑에서 자란 이민 가정의 2세 샘. 축제에 갈 것을 기대하던 아이에게 날아온 것은 청년 극우주의자들이 던진 화염병이었다. 독일 내에 만연한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을 어린 아이의 시선에서 바라보고, 교실에서 항상 샘을 괴롭히는 백인 아이 보리스와의 이중 갈등 구조를 통해 인종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우리나라는 ‘거의’ 단일민족 국가인데다가 이민자나 외국인 체류자라고 해도 대부분 중국 아니면 동남아시아 출신인지라 피부 색깔로 인한 차별 문제가 그렇게 엄청나게 심각하지는 않다. 어떤 아이가 피부색이 검은 친구에게 “빨리 와, 검둥이 새끼야!”라고 소리지르자 식겁했는데 그 학생이 “뭐래.. 2022. 2. 3.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 C.S.루이스 지음, 김선형 옮김. (2018) 신비한 검색 알고리즘의 인도는 유튜브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터키쉬 딜라이트에 대해 알아보다가 나니아 연대기를 찾고, 나니아 연대기에서 자연스럽게 C.S.루이스로 이어지며 그가 쓴 "스크루테이프의 편지"까지 손이 닿았다. 나니아 연대기로 인해 얻는 명성으로 판타지 소설 작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의 본업은 신학자. 더 정확히 말하면 기독교 변증가, 즉 종교를 철학적으로 이해하고 분석하는 사람이다. 이 책은 악마 스크루테이프가 그의 조카에서 쓴 편지를 모은 서간문집의 형태로 되어 있다. 그 편지를 통해 스크루테이프는 어떻게 해야 인간을 타락시킬 수 있는지, 또 원수(하나님)의 작전을 회피하고 저지하려면 어떤 계책을 써야 하는지에 대해 .. 2022. 1. 29.
가을철 한정 구리킨톤 사건 가을철 한정 구리킨톤 사건 /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문학동네 (2017) 갈수록 사건의 스케일도 커지고, 인간관계의 치열함도 커지지만 소소한 트릭만큼은 변하지 않는 소시민 시리즈, 그 세번째. 전작에서 사귀지도 않은 주제에 이별했던 오사나이와 고바토. 여기에 신문부 부원인 우리노가 등장하면서 어설픈 아마추어와 ‘혼모노’의 차이를 보여준다. 소시민이 되기를 바라지만 머리가 너무 잘 굴러가서 억지로 꾹 자제해야 소시민 흉내를 낼 수 있는 캐릭터가 점점 마음에 드는 중. 물론 맛있는 먹거리와 귀여운 표지 역시 여전히 마음에 든다. “사각 칠기 접시에 얌전히 놓인 구리킨톤 두 알. 차분한 노란색으로 알이 굵다. 질끈 묶은 찻수건처럼 맞물린 주름이 앙증맞다. (중략) 훌륭하다. 밤의 풍미가 입안에.. 2022. 1. 26.
키친 키친 /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민음사 (2017) “집 안이라도 둘러봐요. 안내할까요? 뭐로 판단하는 타입이죠?” 차를 따르면서 유이치가 말했다. “뭘요?” 내가 그 푹신한 소파에 앉아 되묻자, “집과 그 집에 사는 사람의 취향. 화장실을 보면 안다든지, 흔히 그런 말들 하잖아요.” 그는 담담하게 웃으면서, 차분하게 말하는 사람이었다. “부엌.”이라고 나는 말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평소 할머니와 친하게 지냈던 청년 다나베 유이치의 집에서 지내게 된 사쿠라이 미카게. 그리고 유이치의 아버지이자 지금은 성전환해서 엄마가 된 에리코. 누군가의 죽음으로 인해 빈 자리에 새로운 사람들이 마치 물이 차듯 채워지며 계속 살아나가는 이야기, 키친. 그리고 키친의 후속편, 에리카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2022. 1. 19.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 토니오 크뢰거, 트리스탄, 베니스에서의 죽음 토니오 크뢰거, 트리스탄, 베니스에서의 죽음 / 토마스 만 지음, 안삼환 외 옮김. 민음사 (2017) 책의 말미에 나와있는 작품 해설의 한 문장이 내 심경을 대변한다. “당시의 독자들은 -요즘의 독자들도 사정은 비슷하겠지만- 이 작품이 도대체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이것이 한 비범한 세공가의 공들인 작품이라는 것만은 느낄 수 있었다.” 토마스 만의 단편 모음집인데, 손에 잡힐듯한 묘사에도 불구하고 이해하는 데 꽤 심력을 소모해야 할 뿐 아니라 결국 큰 감동을 받지는 못한 내 안목의 부족함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세계문학전집을 한바퀴 돌고 나면 이해할 수 있을까? 2022. 1. 18.
버터 버터 / 유즈키 아사코 지음, 권남희 옮김. 이봄 (2021) 여러 모로 뛰어난 미인이라고는 볼 수 없는 30대 중반의 여인, 가지이 마나코. 자신과 함께 지냈던 남자들을 연쇄 살인한 혐의로 수감중인 그녀를, 주간지 기자인 리카가 취재활동을 통해 파악하고 또 그로 인해 내면에 잠재되어있던 자신을 깨닫는다. 여성성이란 무엇인가, 남자들이 원하는 여성상이란 무엇인가, 욕망(그중에서도 특히 식욕)과 사회적 규범이 어떤 식으로 사람을 지배하는가에 대한 질문들이 얽혀가며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여성성, 그리고 남자들이 바라는 여성성의 대립이 얼핏보면 페미니즘 소설이라고 생각하게 만들 수 도 있는데… 글쎄, 개인적인 느낌이라면 페미니즘은 ‘투쟁’의 느낌이 강한 반면, 이 소설에서는 ‘자아 성찰’에 더 가까운지라 약간.. 2021. 12. 30.
여름철 한정 트로피컬 파르페 사건 여름철 한정 트로피컬 파르페 사건 /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문학동네 (2016) 트릭과 추리가 함께하는, 소시민을 지향하는 소년과 복수에 중독된 소녀의 모험 이야기. 트릭은 워낙 소소한데, 케이크 3개 사놓고 하나를 몰래 먼저 먹은 다음 흔적 지우고, 또 그걸 알아차리는 식이라 뭐 대단하게 발전할 건덕지가 없다. 하지만 그게 또 소시민을 추구하는 주인공의 일상과 맞아떨어지며 묘하게 어울린다.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자전거를 도둑맞았던 전편에 비하면, 그래도 불량학생들에게 납치당하는 것으로 나름 스케일이 커지긴 했지만 이야기 자체는 여전히 여름 한정 디저트 순례에 굉장히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명랑한 소리와 함께 테이블에 나온 파르페를 보고 또 한 번 간 떨어질 뻔했다. 높이가 삼십 센티미.. 2021. 12. 19.
애린 왕자 애린 왕자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최현애 옮김. 이팝 (2021) 경상도 사투리 버전으로 번역한 어린왕자. 처음에는 이게 무슨 장난인가 싶다가도, 마지막 장에 127개 언어 - 그것도 주요 언어가 아니라 방언이나 잘 쓰이지 않는 문자, 심지어는 모르스 부호까지 - 로 번역된 목록을 보고 있으면 세상에 이렇게 다양한 문화가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경상도 사투리 버전의 어린 왕자가 주는, 이미 아는 내용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처음 읽는 것마냥 생소한 그 느낌에 다시 한 번 놀란다. 표준 맞춤법으로 읽을 때는 외국인(혹은 외계인) 느낌 물씬 나던 어린 왕자가, 단지 문자만 다르게 썼는데도 어디 바닷가 백사장에 표류한 부산 얼라 느낌으로 돌변한다. 이 책을 보며 언어의 보존과 문화의 다양성에.. 2021. 12. 16.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 / 로버트 뉴턴 팩 지음, 김옥수 옮김. 사계절출판사 (2017) 주인공의 경험을 투영한 자전적 소설인 동시에 성장소설. 미국 개척기 소설을 읽다보면 동화적이고 순박한 기쁨과 냉혹한 현실이 범벅이 되어 뭐라고 형언하기 어려운 감상이 들 때가 많다. 주인공 로버트는 이웃집 소가 출산하는 것을 돕고 돼지 한 마리를 얻게 된다. 소설 내내 돼지를 애지중지 기르며 미국의 농촌에서 있을 법한 여러 일들을 겪고 성장하는 주인공. 시골 축제에서 돼지가 상을 받으며 즐거워하는 것도 잠시, 곧이어 닥친 겨울동안 사슴을 사냥하지 못해 할 수 없이 돼지를 잡아먹게 된다. 읽다보면 ‘이게 대체 뭔가…’ 싶은데, 마치 요술공주가 트럭에 치여 죽는 전개를 보는 듯한 기분이다. 하지만 이런 것이 미.. 2021. 12.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