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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Fiction_소설105

49일의 레시피 49일의 레시피 / 이부키 유키 지음, 김윤수 옮김. 예담 (2011) 오토미가 죽고 남겨진 남편 아쓰타와 전처 소생의 딸 유리코. 그리고 오토미의 부탁을 받았다며 49재가 끝나는 날까지 집안일을 돕겠다는 금발 썬탠 소녀, 이모토. 유리코는 바람 핀 남편과의 이혼을 고민하고, 아쓰타는 오토미의 빈자리를 새삼 깨달으며 외로워한다. 그리고 오토미가 생전에 남긴 살림법과 요리 레시피 카드를 보며 한 걸음,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간다. 세상을 떠난 사람의 흔적과 손길이 살아있는 사람들을 치유한다는 점에서 “러브레터”나 “p.s. I love you”가 떠오르기도 하는 소설. 유리코가 결국 남편과 재결합하는 부분은 일본 감성이라 그런가 좀 이해가 안 되기도 하고, 마지막 반전은 의외로 좀 뻔한 반전이라 어지간하면.. 2021. 12. 3.
봄철 한정 딸기 타르트 사건 봄철 한정 딸기 타르트 사건 /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문학동네 (2016) 음식 이름이 들어간 제목과 먹음직스럽고 귀여운 일러스트가 그려진 표지에 끌려서 읽기 시작한 책. 평범한 소시민이 되는 것을 꿈꾸는 고등학교 신입생, 고바토 조고로와 오사나이 유키. 하지만 그들이 조용히 지내는 것을 방해라도 하듯, 갖가지 소소한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추리소설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애걔, 이게 뭐야’ 싶은 허무한 결말의 연속이지만 짤막한 옴니버스식 구성에 개성있는 캐릭터들이 맞물리며 그냥저냥 가볍게 후루룩 읽기 좋은 소설인듯 하다. 개인적으로는 오사나이의 식탐이 마음에 들어서 나중에 써먹을 수 있겠다 싶은 문장 몇개를 건진 게 수확. “자전거를 도둑맞은 것과 봄철 한정 타르트를 먹지 못한 것... 2021. 11. 27.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 햄릿 세계를 통틀어 뛰어난 문학 작품이라고 하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햄릿. 수많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영국 문학 뿐 아니라 사회 문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빼놓을 수 없는 필독서. 왕자 햄릿이 부왕의 유령을 만나며 복수를 다짐하고 벌어지는, 약간은 보는 사람을 정신 나가게 만드는 것 같은 비극 이야기다. 진짜로 클로디우스가 왕을 죽인것인지, 아니면 햄릿이 원래 미쳐있던 것인지부터 시작해서 글 사이에 숨은 뜻과 상징, 논쟁거리들이 넘쳐난다. 개인적인 감상이라면 줄거리만 놓고 보자면 뭐 엄청 대단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데, 이는 아무래도 언어의 장벽이 크기 때문일 듯. 진정한 걸작은 그 나라의 언어로만 완벽한 감동을 전할 수 있다는 말도 있으니까. 2021. 11. 13.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 허클베리 핀의 모험 '톰 소여의 모험' 후속작. 하지만 톰 소여의 모험이 개구장이 소년의 모험기에 가까웠다면,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일종의 성장 소설인 동시에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하는 느낌이 더 강하다. 집 안에 틀어박혀 예절을 익히고 공부를 해야하는 것이 지옥에 떨어지는 것보다 싫었던 허클베리 핀이 가출을 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부친에게서 도망쳐 나오고, 도망친 흑인 노예와 뗏목을 타고 여행하며 겪는 모험 이야기. 미국 도서관에서는 이 책이 금서로 지정된 적도 있었는데, 작품 내에서 수시로 등장하는 깜둥이(nigger)라는 단어 때문. 미국 유학을 다녀온 입장에서 저 무시무시한 N-word의 파괴력은 가히 볼드모트의 이름을 부르는 것에 필적한다는 것을 알기에 그 반응이 이해가 가지만 또 한편으로는 당시의 사회상이라는 측면.. 2021. 10. 27.
채식주의자 채식주의자 / 한강 지음. 창비 (2007) 한 여인이 고기를 못 먹게 되면서, 주변에서 육식을 강요하고, 이에 대한 반발로 식물적인 삶에 집착하는 과정을 그려낸 소설. 많은 사람들이 이 글을 채식주의자가 겪는 사회적 갈등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실제로도 1부만 놓고 보면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각각 다른 곳에 발표되었던 세 편의 연작이 이 책 한권에 모이면서 ‘알고보니 채식주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물론 에코 페미니즘과 비건은 통하는 구석이 영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여성성과 반(反)폭력과 식물을 잘 버무린 이 소설을 에코 페미니즘이 아니라고 부정하기는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의 전개가 점차 비정상으로 빠져드는 개인 심리 묘사에 큰 비중을 두다보니 .. 2021. 10. 20.
복고풍 요리사의 서정 복고풍 요리사의 서정 / 박상 지음. 작가정신 (2021) 요리사와 도서관 사서라는, 참 어울리지 않는 두 가지 직업을 양립시키고 있는 입장에서 요리사와 시인이라는, 역시 만만치 않게 어울리지 않는 두 가지 직업을 엮어낸 소설을 읽으니 여러 부분에서 공감이 된다. 주인공이 이탈리아 옆의 조그만 섬나라, 삼탈리아에서 요리의 단서를 찾아 시를 풀며 겪는 여러 모험과 과거 회상이 이야기의 큰 틀이다. 소설 자체는 목욕탕 온탕만큼 뜨뜻미지근하다. 열탕만큼 뜨거운 감동이 넘쳐 흐르거나 냉탕만큼 정신 번쩍 들게 만드는 날카로운 지식의 향연은 없다. 하지만 그 뜨뜻미지근한 말장난이 편안하기에 오랫동안 눌러앉아 즐기기엔 안성맞춤이다. 게다가 중간중간 등장하는 요리에 대한 통찰은 알바 경력을 살려서 썼다고는 믿기지 않을.. 2021. 10. 17.
파친코 파친코 / 이민진 지음, 이미정 옮김. 문학사상사 (2018) 사람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는 재미있다. 시대를 투영하는 사람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는 더욱 재미있다. 3대에 걸친 가족사소설의 정형과도 같지만 소설책 두 권 분량이라 그렇게 길지도 않은데다가 흡입력이 있어서 순식간에 다 읽게 된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으로 건너온 가족이 재일한국인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아들, 손자대까지 따라가며 꽤나 담담하게 그려낸다. 이는 작가가 한국계 미국인으로, 얽히고 설킨 한일관계에서 한 걸음 물러서서 (하지만 그렇게 멀지 않은 거리에서) 살펴본 덕이 클 듯 하다. 당사자 입장에서 감정을 쏟아내며 쓴 것도 아니고, 타인의 입장에서 냉정하게 바라본 시선도 아닌 독특한 거리감이 의외로 마음에 든다. 인물에 집중하다보니 당시의.. 2021. 8. 11.
아몬드 아몬드 / 손원평 지음. 창비 (2017) 알렉시티미아(감정표현불능증)에 걸린 소년의 이야기. 사회가 워낙 삭막해져서인지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에 대한 도시 전설도 많이 떠돌아다닌다. 흉악범을 잡으면 수갑 채우기도 전에 정신 감정부터 먼저 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XX사건의 범인, 전형적인 소시오패스로 밝혀져” 이런 류의 헤드라인이 넘쳐난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감정을 느끼는 부분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은 폭력적이고 변태적으로 “변질”된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결국 다양한 정신적, 감정적 스펙트럼을 단지 평균과는 다르다는 이유로 사이코패스라는 프레임에 가둬서 선입견을 갖게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소설에서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발전시키면서 그러한 결여된 부분을.. 2021. 8. 5.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 암흑의 핵심 을유문화사판 '어둠의 심연' 쪽이 좀 그럴듯하지 않은가 생각되는 제목, Heart of Darkness. 영화 '지욱의 묵시록'의 원작 소설로 잘 알려져 있는데, 이건 어지간해서는 영화가 낫다는 소리다. 소설이 명작 아닌 것은 아닌데 영화를 보고 나서 그 기대치를 갖고 읽으면 실망하기 십상. 찰스 말로우라는 선원 (작가의 삶을 반영하는 자전적 캐릭터)의 이야기를 듣는 형식으로 진행되는데다가 꽤나 고색창연한 표현들이 긴 호흡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쉽게 질릴 수 있다. 찰스 말로우가 콩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며 상아 교역소를 찾아가고, 그곳에서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한 교역소장 커츠와 만나게 된다. 이른바 서구 문명사회에서는 점잖은 지식인이었던 커츠가 아프리카에서는 이기적이고 잔인한 면모를 보이며 원주민들을 수탈.. 2021. 8. 1.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 변신, 시골의사 이상의 글을 읽었을 때와 거의 비슷한 느낌. 뭔가 있는 것 같긴 한데 그게 뭔지는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난해하달까. 머릿속에서 글을 써서 완성되면 한 번에 옮겨적는 식으로 집필 작업을 하고, 때때로 자기 작품을 찢어버리거나 불태우길 좋아하던 작가에게 독자를 위한 배려보다는 자기 표현의 의지가 훨씬 더 강했으리라 생각한다. 카프카의 대표작 중 하나인 '변신'은 그나마 좀 친절하다. 내용 자체는 자고 일어나보니 벌레로 변해 고뇌하고 괴로워하고 외로워하고 결국 죽음을 맞는 주인공의 이야기. 주변의 압박과 기대에 짓눌려 신음하는, 캄캄한 미래를 한걸음씩 걸어가는 청춘이라면 공감할만한 부분이 많을 듯하다. (물론 카프카의 소설답게 이외에도 수많은 해석이 존재하지만) 그 외에도 '학술원에의 보고'나 '황제의 전갈'.. 2021. 6. 10.
킹 세종 더 그레이트 국뽕에 취한다는 건 무엇인가? 우리나라의 위대함에 취해 애국심이 절로 뿜어져 나오는, 마약을 흡입한 것과도 같은 상태를 말한다. 여기서 조금만 삐끗하면 파시즘이나 나치즘같은 극우주의로 변질될 우려도 없잖아 있지만, 국뽕이라 함은 그런 민족우월주의 성향은 많이 옅어진 탓에 대다수의 경우는 ‘한국 선수가 국제무대에서 우승하는 것에 열광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개인이 아무리 뛰어난 성적을 거둔다 해도 이것이 국가 전체를 반영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카즈히로 감독에게 국뽕 좀 타먹으려고 “일본인으로서, 일본에서의 경험이 상을 타는데 도움이 되었습니까?”라는 기자의 질문에 “나는 그 문화에 진저리가 나서 일본을 떠나 미국인이 되었습니다”라고 노빠꾸 스트레이트를 꽂은 것처럼, 우리나.. 2021. 2. 28.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 고리오 영감 19세기 유럽은 그야말로 복마전이라 할 수 있었다. 1%도 안되는 부유층과, 의사나 변호사와 같은 10%의 고급 노동자, 그리고 죽지 못해 살아가는 하층민이 나머지 90%를 차지하는 현실 속에서 축복받은 이들은 ‘오만과 편견’을 찍고 버림받은 이들은 ‘레미제라블’을 찍는 상황.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출세를 하기 위해서는 열심히 일하기보다는 어떻게든 결혼을 잘 해서 상류층으로 편입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었다. 요즘으로 비유하면 의사나 변호사로 아무리 성공해봤자 조그마한 건물 한 채 갖고 있는 건물주가 버는 수입 발끝도 못 따라가는 경우랄까. 물론 그 당시에는 건물주라기보다는 농장이나 사업체를 가진 귀족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 소설의 제목은 ‘고리오 영감’이지만 주인공은 으젠 라스티냐크라는 젊은이다. 두.. 2021. 2.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