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Fiction_소설113 채식주의자 채식주의자 / 한강 지음. 창비 (2007) 한 여인이 고기를 못 먹게 되면서, 주변에서 육식을 강요하고, 이에 대한 반발로 식물적인 삶에 집착하는 과정을 그려낸 소설. 많은 사람들이 이 글을 채식주의자가 겪는 사회적 갈등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실제로도 1부만 놓고 보면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각각 다른 곳에 발표되었던 세 편의 연작이 이 책 한권에 모이면서 ‘알고보니 채식주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물론 에코 페미니즘과 비건은 통하는 구석이 영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여성성과 반(反)폭력과 식물을 잘 버무린 이 소설을 에코 페미니즘이 아니라고 부정하기는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의 전개가 점차 비정상으로 빠져드는 개인 심리 묘사에 큰 비중을 두다보니 .. 2021. 10. 20. 복고풍 요리사의 서정 복고풍 요리사의 서정 / 박상 지음. 작가정신 (2021) 요리사와 도서관 사서라는, 참 어울리지 않는 두 가지 직업을 양립시키고 있는 입장에서 요리사와 시인이라는, 역시 만만치 않게 어울리지 않는 두 가지 직업을 엮어낸 소설을 읽으니 여러 부분에서 공감이 된다. 주인공이 이탈리아 옆의 조그만 섬나라, 삼탈리아에서 요리의 단서를 찾아 시를 풀며 겪는 여러 모험과 과거 회상이 이야기의 큰 틀이다. 소설 자체는 목욕탕 온탕만큼 뜨뜻미지근하다. 열탕만큼 뜨거운 감동이 넘쳐 흐르거나 냉탕만큼 정신 번쩍 들게 만드는 날카로운 지식의 향연은 없다. 하지만 그 뜨뜻미지근한 말장난이 편안하기에 오랫동안 눌러앉아 즐기기엔 안성맞춤이다. 게다가 중간중간 등장하는 요리에 대한 통찰은 알바 경력을 살려서 썼다고는 믿기지 않을.. 2021. 10. 17. 파친코 파친코 / 이민진 지음, 이미정 옮김. 문학사상사 (2018) 사람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는 재미있다. 시대를 투영하는 사람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는 더욱 재미있다. 3대에 걸친 가족사소설의 정형과도 같지만 소설책 두 권 분량이라 그렇게 길지도 않은데다가 흡입력이 있어서 순식간에 다 읽게 된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으로 건너온 가족이 재일한국인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아들, 손자대까지 따라가며 꽤나 담담하게 그려낸다. 이는 작가가 한국계 미국인으로, 얽히고 설킨 한일관계에서 한 걸음 물러서서 (하지만 그렇게 멀지 않은 거리에서) 살펴본 덕이 클 듯 하다. 당사자 입장에서 감정을 쏟아내며 쓴 것도 아니고, 타인의 입장에서 냉정하게 바라본 시선도 아닌 독특한 거리감이 의외로 마음에 든다. 인물에 집중하다보니 당시의.. 2021. 8. 11. 아몬드 아몬드 / 손원평 지음. 창비 (2017) 알렉시티미아(감정표현불능증)에 걸린 소년의 이야기. 사회가 워낙 삭막해져서인지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에 대한 도시 전설도 많이 떠돌아다닌다. 흉악범을 잡으면 수갑 채우기도 전에 정신 감정부터 먼저 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XX사건의 범인, 전형적인 소시오패스로 밝혀져” 이런 류의 헤드라인이 넘쳐난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감정을 느끼는 부분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은 폭력적이고 변태적으로 “변질”된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결국 다양한 정신적, 감정적 스펙트럼을 단지 평균과는 다르다는 이유로 사이코패스라는 프레임에 가둬서 선입견을 갖게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소설에서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발전시키면서 그러한 결여된 부분을.. 2021. 8. 5.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 암흑의 핵심 을유문화사판 '어둠의 심연' 쪽이 좀 그럴듯하지 않은가 생각되는 제목, Heart of Darkness. 영화 '지욱의 묵시록'의 원작 소설로 잘 알려져 있는데, 이건 어지간해서는 영화가 낫다는 소리다. 소설이 명작 아닌 것은 아닌데 영화를 보고 나서 그 기대치를 갖고 읽으면 실망하기 십상. 찰스 말로우라는 선원 (작가의 삶을 반영하는 자전적 캐릭터)의 이야기를 듣는 형식으로 진행되는데다가 꽤나 고색창연한 표현들이 긴 호흡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쉽게 질릴 수 있다. 찰스 말로우가 콩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며 상아 교역소를 찾아가고, 그곳에서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한 교역소장 커츠와 만나게 된다. 이른바 서구 문명사회에서는 점잖은 지식인이었던 커츠가 아프리카에서는 이기적이고 잔인한 면모를 보이며 원주민들을 수탈.. 2021. 8. 1.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 변신, 시골의사 이상의 글을 읽었을 때와 거의 비슷한 느낌. 뭔가 있는 것 같긴 한데 그게 뭔지는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난해하달까. 머릿속에서 글을 써서 완성되면 한 번에 옮겨적는 식으로 집필 작업을 하고, 때때로 자기 작품을 찢어버리거나 불태우길 좋아하던 작가에게 독자를 위한 배려보다는 자기 표현의 의지가 훨씬 더 강했으리라 생각한다. 카프카의 대표작 중 하나인 '변신'은 그나마 좀 친절하다. 내용 자체는 자고 일어나보니 벌레로 변해 고뇌하고 괴로워하고 외로워하고 결국 죽음을 맞는 주인공의 이야기. 주변의 압박과 기대에 짓눌려 신음하는, 캄캄한 미래를 한걸음씩 걸어가는 청춘이라면 공감할만한 부분이 많을 듯하다. (물론 카프카의 소설답게 이외에도 수많은 해석이 존재하지만) 그 외에도 '학술원에의 보고'나 '황제의 전갈'.. 2021. 6. 10. 킹 세종 더 그레이트 국뽕에 취한다는 건 무엇인가? 우리나라의 위대함에 취해 애국심이 절로 뿜어져 나오는, 마약을 흡입한 것과도 같은 상태를 말한다. 여기서 조금만 삐끗하면 파시즘이나 나치즘같은 극우주의로 변질될 우려도 없잖아 있지만, 국뽕이라 함은 그런 민족우월주의 성향은 많이 옅어진 탓에 대다수의 경우는 ‘한국 선수가 국제무대에서 우승하는 것에 열광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개인이 아무리 뛰어난 성적을 거둔다 해도 이것이 국가 전체를 반영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카즈히로 감독에게 국뽕 좀 타먹으려고 “일본인으로서, 일본에서의 경험이 상을 타는데 도움이 되었습니까?”라는 기자의 질문에 “나는 그 문화에 진저리가 나서 일본을 떠나 미국인이 되었습니다”라고 노빠꾸 스트레이트를 꽂은 것처럼, 우리나.. 2021. 2. 28.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 고리오 영감 19세기 유럽은 그야말로 복마전이라 할 수 있었다. 1%도 안되는 부유층과, 의사나 변호사와 같은 10%의 고급 노동자, 그리고 죽지 못해 살아가는 하층민이 나머지 90%를 차지하는 현실 속에서 축복받은 이들은 ‘오만과 편견’을 찍고 버림받은 이들은 ‘레미제라블’을 찍는 상황.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출세를 하기 위해서는 열심히 일하기보다는 어떻게든 결혼을 잘 해서 상류층으로 편입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었다. 요즘으로 비유하면 의사나 변호사로 아무리 성공해봤자 조그마한 건물 한 채 갖고 있는 건물주가 버는 수입 발끝도 못 따라가는 경우랄까. 물론 그 당시에는 건물주라기보다는 농장이나 사업체를 가진 귀족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 소설의 제목은 ‘고리오 영감’이지만 주인공은 으젠 라스티냐크라는 젊은이다. 두.. 2021. 2. 23. 동급생 그 아이가 일어섰다. “그라프 폰 호엔펠스, 콘라딘이라고 합니다.” 그가 자기소개를 했다. “1916년 1월 19일 뷔르템베르크의 호엔펠스 성에서 태어났고요.” 그러고는 자기 자리에 앉았다. 왠지 판타지 소설의 잘난 주인공이 할 법한 자기소개. 그의 이름만큼이나 옷차림과 행동거지가 귀족스러운 전학생이 오면서 소설의 열 여섯살 주인공 ‘나-한스 슈바르츠’의 관심은 오로지 콘라딘의 친구가 되는 것에 쏠린다. 서로의 취미를 공유하고 조금씩 친해지며 세상을 다 가진듯한 감격에 휩싸이는 나. 하지만 나치당이 집권하고 급변하는 독일의 상황은 모든 것을 변하게 만든다. 이 책의 서평에 자주 등장하는 ‘조그만 책’이라는 표현은 틀린 말이 아니다. 한 손에도 들어올 법한 조그만 판형도 그렇고, 160페이지라는 길이 역시.. 2020. 12. 22.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 변신이야기 - 변신이야기(전2권), 오비디우스 저, 이윤기 옮김, 민음사 (1998) 어떤 도서관을 가더라도 기본적으로 갖추는 자료가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이다. 2020년 기준으로 총 368권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문학 서적들은 어디에 놓더라도 막강한 존재감을 자랑한다. 이 전집을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커다란 나무 한 그루를 통째로 갈아서 종이로 만들어야 이 책들을 다 찍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 하지만 그보다 더 사람을 압도하는 것은 이 수많은 책들이 문학 작품 중에서도 엄선된, 그야말로 인류 지성의 면모를 살피기 위해서는 반드시 읽어야 할 최소한의 편린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문학적 소양을 갖추기 위해 읽어야 할 책이 기다란 책장을 가득 채울 정도로 늘어서 .. 2020. 12. 10. 헝거 게임 전국을 두 편으로 갈라 서로 싸웠던 전쟁의 결과로 인해 13구역은 완전히 파괴되었고, 나머지 열두 구역에서는 '캐피톨'의 풍족한 생활을 보장하는 각종 산업 생산물을 만들어 바치는 한편 매년 소년 소녀 한쌍을 선발해서 마지막 한 사람이 남을때까지 서로 죽고 죽이는 헝거 게임의 조공인으로 보내게 된다. 어린아이들이 죽을때까지 싸운다는 점에선 '이게 왠 배틀로얄 짝퉁?'이라고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따지고 보면 '파리대왕'에서부터 이런 컨셉은 은근히 이어져왔고, 한정된 공간에서 서로 죽고 죽인다는 점에선 로마 제국의 검투사 경기 이래로 자주 애용되던 소재이니 만큼 굳이 따질 필요는 없을 듯 하다. 탄광 지역인 12구역의 여자아이가 조공인으로 선발되고 살아남는 이야기가 주된 줄거리지만, 그 과정에서 사회적 갈등이.. 2012. 7. 20. 슬럼독 밀리어네어 인도의 한 가난한 청년이 천문학적인 상금이 걸린 퀴즈쇼에서 우승을 한다. 방송국에서는 제대로 교육도 받지 못한 그가 문제를 맞출 수 있을리 없다며 뭔가 부정행위가 있을 거라고 확신하고, 변호사는 그가 풀어낸 문제의 답들이 그의 인생과 밀접하게 연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말을 들으며 그가 살아온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한줄로 요약하면 우연에 우연이 겹치면서 운좋게 퀴즈쇼에 우승하게 된 인생 이야기. 하지만 이렇게 간단하게 넘기기엔 각 에피소드가 워낙 재미있다. 어떻게 생각하면 억지로 끼워맞춘 이야기이지만, 그런거 신경 안쓰고 재밌게 보긴 좋은듯. 특히 우리가 타지마할이나 코끼리, 힌두교 사원 등 추상적으로만 보아 왔던 인도의 또 다른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낸 점도 매력이다. 그리고 그런 배경 속에서.. 2010. 10. 16. 이전 1 2 3 4 5 6 7 8 ··· 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