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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Fiction_소설105

동급생 그 아이가 일어섰다. “그라프 폰 호엔펠스, 콘라딘이라고 합니다.” 그가 자기소개를 했다. “1916년 1월 19일 뷔르템베르크의 호엔펠스 성에서 태어났고요.” 그러고는 자기 자리에 앉았다. 왠지 판타지 소설의 잘난 주인공이 할 법한 자기소개. 그의 이름만큼이나 옷차림과 행동거지가 귀족스러운 전학생이 오면서 소설의 열 여섯살 주인공 ‘나-한스 슈바르츠’의 관심은 오로지 콘라딘의 친구가 되는 것에 쏠린다. 서로의 취미를 공유하고 조금씩 친해지며 세상을 다 가진듯한 감격에 휩싸이는 나. 하지만 나치당이 집권하고 급변하는 독일의 상황은 모든 것을 변하게 만든다. 이 책의 서평에 자주 등장하는 ‘조그만 책’이라는 표현은 틀린 말이 아니다. 한 손에도 들어올 법한 조그만 판형도 그렇고, 160페이지라는 길이 역시.. 2020. 12. 22.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 변신이야기 - 변신이야기(전2권), 오비디우스 저, 이윤기 옮김, 민음사 (1998) 어떤 도서관을 가더라도 기본적으로 갖추는 자료가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이다. 2020년 기준으로 총 368권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문학 서적들은 어디에 놓더라도 막강한 존재감을 자랑한다. 이 전집을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커다란 나무 한 그루를 통째로 갈아서 종이로 만들어야 이 책들을 다 찍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 하지만 그보다 더 사람을 압도하는 것은 이 수많은 책들이 문학 작품 중에서도 엄선된, 그야말로 인류 지성의 면모를 살피기 위해서는 반드시 읽어야 할 최소한의 편린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문학적 소양을 갖추기 위해 읽어야 할 책이 기다란 책장을 가득 채울 정도로 늘어서 .. 2020. 12. 10.
헝거 게임 전국을 두 편으로 갈라 서로 싸웠던 전쟁의 결과로 인해 13구역은 완전히 파괴되었고, 나머지 열두 구역에서는 '캐피톨'의 풍족한 생활을 보장하는 각종 산업 생산물을 만들어 바치는 한편 매년 소년 소녀 한쌍을 선발해서 마지막 한 사람이 남을때까지 서로 죽고 죽이는 헝거 게임의 조공인으로 보내게 된다. 어린아이들이 죽을때까지 싸운다는 점에선 '이게 왠 배틀로얄 짝퉁?'이라고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따지고 보면 '파리대왕'에서부터 이런 컨셉은 은근히 이어져왔고, 한정된 공간에서 서로 죽고 죽인다는 점에선 로마 제국의 검투사 경기 이래로 자주 애용되던 소재이니 만큼 굳이 따질 필요는 없을 듯 하다. 탄광 지역인 12구역의 여자아이가 조공인으로 선발되고 살아남는 이야기가 주된 줄거리지만, 그 과정에서 사회적 갈등이.. 2012. 7. 20.
슬럼독 밀리어네어 인도의 한 가난한 청년이 천문학적인 상금이 걸린 퀴즈쇼에서 우승을 한다. 방송국에서는 제대로 교육도 받지 못한 그가 문제를 맞출 수 있을리 없다며 뭔가 부정행위가 있을 거라고 확신하고, 변호사는 그가 풀어낸 문제의 답들이 그의 인생과 밀접하게 연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말을 들으며 그가 살아온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한줄로 요약하면 우연에 우연이 겹치면서 운좋게 퀴즈쇼에 우승하게 된 인생 이야기. 하지만 이렇게 간단하게 넘기기엔 각 에피소드가 워낙 재미있다. 어떻게 생각하면 억지로 끼워맞춘 이야기이지만, 그런거 신경 안쓰고 재밌게 보긴 좋은듯. 특히 우리가 타지마할이나 코끼리, 힌두교 사원 등 추상적으로만 보아 왔던 인도의 또 다른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낸 점도 매력이다. 그리고 그런 배경 속에서.. 2010. 10. 16.
사냥꾼의 현상금 견인도시 연대기, 제 2권. "사냥꾼의 현상금" 전쟁으로 인해 자원이 바닥나자 사람들이 도시를 들어내서 바퀴 위에 얹고 달리며 보다 작은 도시들을 집어삼키는 미래 세계. 전편(http://blackdiary.tistory.com/681)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런던 출신 견습 고고학자 톰과, (미녀가 아니라는 것만 빼면) 전형적인 막무가내 여성 모험가 헤스터가 다시 등장한다. 비행선 제니 하니버를 물려받아(?) 여행을 계속하는 커플. 얼음 도시 앵커리지와 아메리칸 드림을 주장하는 페니로얄 교수, 반견인도시연맹의 급진주의자들인 그린 스톰과 안나 팽의 부활, 그리고 그림자 속에서 모든 것을 조종하던 엉클의 등장, 거대도시 아크에인절의 숨막히는 추격... 이건 뭐 너무 많은 사건,사고 소식에 9시 뉴스 전체가.. 2010. 9. 11.
유령여단 지난번에 읽었던 노인의 전쟁(http://blackdiary.tistory.com/678)의 후속편. 후속편이라고는 하지만 등장인물은 대거 바뀌었고, 분위기 역시 상당히 달라졌다. 전편이 새로운 우주를 접하며 벌어지는 전쟁 소설이었다면 유령여단은 그 반대로 개인의 내면세계와 정신을 끊임없이 관찰하며 벌어지는 전쟁 소설이라고나 할까. 지구인(우주개척연맹)을 배반한 배신자의 생각을 알아내기 위해 만든 복제인간이 주인공이니 그럴만도 하다. 그렇다고해서 존 스칼지 특유의 재미있는 이야기가 사라진 건 아니다. 좀 진지하긴 해도 노인의 전쟁만큼이나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이어진다. 3부작의 마지막인 '마지막 행성'이 빨리 발간되었으면 하는 생각. 2010. 9. 11.
한니발 영화계 최고의 악당으로 항상 1위를 지키던 다스베이더를 몰아낸 장본인, 한니발 렉터 박사. 그가 등장하는 소설은 레드 드래곤(1981)-양들의 침묵(1988)-한니발(1999)-한니발 라이징(2006)순으로 출간되었다. 하지만 영화화된 순서는 약간 다른데, 양들의 침묵(1991)-한니발(2001)-레드 드래곤(2002)-한니발 라이징(2007)의 순서다. 더 헷갈리는건, 내용상 사건이 벌어진 순서는 한니발 라이징-레드 드래곤-양들의 침묵-한니발 순서라는거. 개인적으로는 일단 영화를 순서대로 다 훑어보고 소설을 순서대로 읽기를 권장한다. 양들의 침묵을 제외하면 모든 면에서 원작 소설이 더 낫다고 생각되는데다가 소설 원작의 영화는 소설을 미리 읽고 보면 왠지 흥미가 덜하기 때문. (영화를 보고 나서 소설을 .. 2010. 9. 7.
모털 엔진 거대한 전쟁으로 황폐해진 미래. 사람들은 부족한 자원을 채취하기 위해 도시를 통채로 바퀴 위에 올리고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더 작은 도시를 집어삼키고 더 큰 도시에 잡아먹히며 점점 더 커져가는 도시들. 그리고 고전적인 방식으로 도시를 만들어가는 반견인도시 연맹과의 대립. 강력한 파괴력을 가진 고대 무기가 발굴되면서 벌어지는 음모, 추적, 모험 등등~ 다양한 모습의 움직이는 도시들은 왠지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연상시키고, 여기에 비행정 편대와 기계인간이 어우러지며 만들어내는 풍경은 전형적인 스팀펑크 SF판타지라고 할만하다. 하지만 더 큰 도시(체제)가 다른 작은 도시를 통채로 포획해서 산산조각내고, 그 부속품을 흡수하고, 거주민들을 노예로 만드는 모습은 왠지 이게 유토피아인지 디스토피아인지 헷갈리게 만.. 2010. 8. 11.
노인의 전쟁 이제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에게, 젊은 몸과 새로운 인생을 줄테니 10년간 전쟁터에 나가 싸우라고 한다면? 이러한 상상에서 시작된 SF 전쟁 소설이 바로 '노인의 전쟁'이다. 전체적인 분위기나 내용은 스타쉽 트루퍼스와 비슷하지만 주제의 무거움 면에서는 그보다 좀 가볍고, 그만큼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는게 장점이자 단점일듯 하다. 물론 소설 속에서 다루는 여러가지 소재는 나름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지만 어디까지나 살짝 언급만 할 뿐, 본격적으로 파고들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본문에서 나오는, 늙은 몸에서 새로운 몸으로 정신을 이동시킬때 보여주는 광경은 여기에 집중하자면 이것만 갖고도 책 한권 따로 나올법한 분량이지만 3~4페이지 정도 언급하고 만다고 할까. 그러므로 이 소설을 본다면 그저 머리를 비.. 2010. 8. 10.
괴담 한 나라의 문학이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물론 다른 나라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국력도 중요하고, 뛰어난 작품이 나오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많은 문학작품들이 번역되어 외국에 소개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일본 문학과 한국 문학이 세계적으로 차지하는 위치나 위상이 다른 이유도 여기에서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이 책 - 괴담만 하더라도 본질적으로는 일본 민간에 전승되어 내려오던 각종 설화를 묶은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 출신의 그리스계 서양인이었던 저자, 라프카디오 헌이 일본에 심취되어 귀화까지 하면서 번역하고 소개했기 때문에 국제적인 문학사상에서 일본 문학이 차지하는 위치를 몇계단 상승시키는 계기가 되.. 2010. 8. 6.
최후의 끽연자 일본 SF소설계의 거장, 츠츠이 야스타카 단편집. 그의 대표작인 '파프리카'나 '시간을 달리는 소녀'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츠츠이 야스타카의 소설은 그야말로 허무맹랑, 기괴발랄하다고나 할까. 현실속에서 살다가 난데없이 튀어나온 구멍에 빠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만드는 듯한 느낌이다. 물론 단편집에 수록된 작품들이 철학적 깊이가 깊다거나, 심오한 주제의식을 갖고 있다고 하기엔 좀 무리가 있다. 하지만 부담없이 즐거운 (혹은 어이없는) 상상을 만끽할 수 있다는게 이 책의 장점일듯 하다. 2010. 8. 5.
스티븐 킹 단편집 - Night shift 메이져 소설작가이며, 공포소설쪽에선 독보적인 존재인 스티븐 킹. 장편 뿐만 아니라 단편도 많이 썼기 때문에 그의 단편집도 여러권 존재한다. 이건 그 중 하나인 'Night Shift' 책의 제목이기도 한 '철야근무'를 비롯하여 20편의 단편소설이 실려있다. 개인적으로 스티븐 킹 단편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금연 주식회사'도 있고, 기계에 대한 공포심이 무럭무럭 솟아나오게 만드는 '맹글러'나 '트럭'도 나쁘지 않다. 사람에 따라선 간혹 가다 지루하게 느껴지는 단편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런건 그냥 넘겨버릴 수 있다는게 단편집의 묘미. 스티븐 킹이 서문에서 스스로 밝혔듯이 '운전하고 가다가 잠시 속도를 줄이며 사고현장을 보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 역시 그냥 지나칠 수는 없을 듯 하다. 2010. 8. 5.